鶴峯(학봉)선생의 道學精神(도학정신)
鄭寒岡(정한강)선생이 撰(찬)한 鶴峯(학봉)선생의 墓榜石(묘방석)의 글에
「충성은 社稷(사직)을 保全(보전)케 했으니 이름은 祖國歷史(조국역사)에 길이 실리리라. 일찍이 退溪(퇴계)선생의 門(문)에 올라 心學(심학)의 要道(요도)를 들었고 德行(덕행)과 勳業(훈업)은 모두 넉넉히 千百代(천백대)에 빛나리라」 고 한 것으로 보아 大學者(대학자)로서 理論(이론)과 德行(덕행)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여 儒林(유림)에 전했건만 아쉬움은 임란중의 순국으로 학문상의 著作(저작)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란 중에 쓴 글들이 있으나 망실이 많고 그중 남겨진 것 몇 편을 수집해서 鶴峯集(학봉집)으로 전할뿐이다.
선생의 문장이나 年譜(연보)에서 보면 그 詩(시)나 문장이나 처세에서 吟風弄月(음풍농월)한 면을 찾기가 어렵다.
선생은 子姪(자질)에게나 門人(문인)들에게 바르게 곧게 살기만을 강조했던 것이다.
일찍이 이르기를 「내 평생 한마디 말을 얻었으니, 나의 허물을 나무라는 이 사람이 나의 스승이요 나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자는 나의 賊(적)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寬弘(관홍)」 두 자를 크게 써서 벽에 붙여 놓고 늘 보며 반성하여 좌우명으로 삼았다 한다.
鶴峰(학봉)선생의 유서 깊은 宗宅(종택)은 지금도 안동시 西後面(서후면)에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선생의 기념관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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