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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불교와 기독교와의 對照論(대조론) 5.

청남

 

 

불교와 기독교와의 對照論(대조론) 5.

 

) 自然的因果論(자연적인과론)意向的因果

(의향적인과론)

 

불교는 自然的因果論(자연적인과론)이고 기독교는 意向的因果論(의향적인과론)이다.

 

불교에서 논하는 因果(인과)의 해석은 각 교파의 교리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이를 요악하면 因果(인과)有形(유형)에서 살펴보아도 無形(무형)에서 살펴보아도 모두가 만유 자신의 세력작용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현상이고, 자연스럽게 경험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나 ()의 힘으로도 이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사람의 힘으로도 어찌 할 수 없는 천연의 원리가 因果理法(인과리법)이라고 한다.

 

그런대 만물이 끊임없이 生成(생성)되고 變化(변화)하여 그치지 아니하고, 枯死(고사)하고 衰退(쇠퇴)하여 중지 아니 하는 것은 무엇 대문일까?

이는 만물 외부에서 만물을 生枯(생고) 榮衰(영쇠) 시키는 자가 있어서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萬物(만물) 그 자체가 원래 보존하고 있는 勢力(세력)에 의해 각자 스스로 一定不變(일정불변)의 법칙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천태만상으로 변화하는 형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時計(시계)에 용수철을 감아 한번 彈力(탄력)을 가하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자연히 그 운행을 정지하지 아니하고 시시각각으로 다른 힘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것과도 같다.

이와 같이 우리들 인류가 현재 貧富(빈부) 貴賤(귀천) 禍福(화복) 등 여러 가지 잡다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도, 또한 미래세에 苦樂(고락) 昇沈(승침) 禍福(화복) 迷悟(미오) 등등 천 가지 만 가지로 달라 질수 있는 것은, 모두가 우리들 자신이 만든 身口意(신구의) 三業(삼업)의 과보라고 하는 것이 불교인과의 大要(대요)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설은 앞에서도 말 한바와 같이 萬有因果(만유인과)의 이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萬有(만유)大原因(대원인)을 유일신에 귀착시키는 것으로서 그 ()敎理(교리)로 삼고 있다.

()은 인간과 달라 지극히 완전하고, 지극히 ()하고, 지극히 ()하고,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바르고 실로 광대무변하며, 전지전능한 힘을 갖는 자이지만 그의 智力(지력) 意志(의지) 感情(감정)心性作用(심성작용)이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들 인류와 비슷한 것 같다.

 

신은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에서 ()인 우주를 창조하고, 지상과 천상의 만물을 만들고, 사계절을 만들어 기후의 변화를 일으키게 하고, 만물에 榮枯(영고) 盛衰(성쇠)를 나타내게 한다.

또한 신은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사랑하는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신의 명령에 복종하고, ()敬畏(경외)하면 신은 이에 감복하여 그 자를 愛好(애호)한다.

그리고 신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末日(말일)에 우리들의 선악행위를 심판해서, 착한 자는 천당에 보내 행복하게 살게 하고, 惡人(악인)은 지옥으로 보내 고통을 받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 우주의 본체도, 천지만물의 모든 현상도, 우리들이 현재와 미래에 받게 될 모든 고락 화복 등도 모두 ()이 관장하는 것이며, 신의 뜻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이로서 우리는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해서 불교는 自然的因果論(자연적인과론)이고 기독교는 意向的因果論(의향적인과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 두 인과론 가운데 어느 쪽을 진리라고 생각 하는 것이 정당할까.

이를 人智(인지)가 진보하고, 論理(논리)가 발달하는 순서와 규율에 비추어 둘을 비평해 보기로 한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설은 人智(인지)가 이직 발달하지 못하고 學理(학리)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던 야만시대에, 萬有(만유)現象(현상)과 사후 영혼에 관한 懷疑(회의)를 해결하려 한데서 생겨난 불합리한 논리라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반해서 불교는 인간의 지혜가 이미 발달한 開明(개명) 시대에 만물고유의 법칙규율을 연구해서 얻은 推理(추리)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가 각국 고대의 情狀(정상)을 살펴보면, 어느 나라이고 고대 미개시대에도 萬有(만유), 어떤 법칙과 같기도 하고 질서 비슷한 것과, 세력과 같기도 하고 원인 같기도 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어느 일정한 規範(규범)이 있어서 만유는 각기 서로 다른 현상을 나타내며 그치지 않는다고 하는 學理的(학리적) 思想(사상)이 조금이라도 없는 곳은 없었다.

그때 各國(각국)에는 일반화된 理學的(이학적) 사상의 개념은 없었어도, 눈을 들어 우주를 보면 여러 가지 현상이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이상하게 전개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인가.하고 마음에 의문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상상력을 발휘하여, 훨훨 타는 불을 보고는 그것은 火神(화신)의 작용에서 오는 것이고, 양양한 대해의 파도를 보면 그것은 水神(수신)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하늘에 울리는 천둥 번개를 보면 그것은 雷神(뇌신) 작용이라 생각 했고, 쏟아지는 비를 보면 그것은 雨神(우신)의 작용으로 생각했고, 하늘이 찬란하게 밝은 것은 日神(일신) 月神(월신)의 작용이라고 생각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萬象(만상)의 변화운동은 인간이외 만물에 달려 있으며, 이를 주관하고 좌우하는 신령스러운 능력을 가진 자가 있어 이를 지휘하는 고로, 자연계에서 신출귀몰한 현상을 보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萬有(만유)에 숨어 있는 세력은 전적으로 다른 神力(신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想像論(상상론)을 신봉 한 것이 사상개발의 초기단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多神論(다신론)에서 일보 전진한 것이 기독교 등의 一神論(일신론)이라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一神論(일신론)多神論(다신론)이 진보한 것이니, 그들은 ()絶對無限(절대무한)이라 생각하고 또 至公(지공) 至全(지전) 至眞(지진) 至實(지실) 至妙(지묘) 한 자라 생각하고 이를 萬有(만유)一大原因(일대원인)이라고 하는 ()로서, 多神論(다신론) 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만유의 변화운동, 영혼의 고락 등을 각 고유의 내재된 理法(이법)이라 하지 않고, 이를 萬有(만유) 밖에 오묘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의지를 가진 ()이 있어 그 신이 이를 관장하고 指揮(지휘)하고 干涉(간섭)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점에서는 多神論(다신론)習氣(습기)를 완전히 타파했다고 말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理學的(이학적) 실험과, 철학적 추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萬有(만유)不滅(불멸)이다. 이 불멸의 만유가 무엇에 의해 변화하고, 어찌하여 움직이며 그치지 아니하는가. 불멸의 만유에는 원래의 勢力(세력)을 보존하려는 성질이 있다. 그 만물보존의 세력이 능히 奇奇怪怪(기기괴괴)한 변화운동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만유는 불멸이며, 불멸인 그 만유에 시발점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철학 이론에도 맞지 아니하고, 또한 만유가 변화운동 한다고 해도 그 만유는 원래 ()에서 ()가 생겨난 것이라는 것도 철학사상과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理學(이학)의 실험 성적에 의하거나 철학상의 추리에 의해서도 기독교가 만물 이외에 有意的(유의적) ()이 있어서, 만유의 현상 및 영혼 승침을 지배하고, 모든 현상은 ()의 뜻이 근본 원인이라는 설은, 人智(인지)가 미개 할 때 생겨난 고대의 불합리한 논리의 유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에 반해서 불교의 自然的因果論(자연적인과론)은 만물의 본체는 본래부터 保存(보존) 되었고, 미래에도 영구불멸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불생불멸의 만물의 본체에 고유한 勢力(세력), 시간적으로 전후 계속되는 因果法則(인과법칙)을 그 萬有(만유)의 성질로 하며 또한 원래보존된 것이라고 한다.

공간적으로는 피차서로 交涉(교섭) 依持(의지)하는 인과법을 각자의 천성으로 하는데, 이는 이미 만유 각자에게 본래 있었던 고유한 자연적인 성질이다. 그리고 이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이며, 부처도 ()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선행으로 복을 받고, 악행으로 화를 당하는 것도 역시 이 理法(이법)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라는 설은 理學(이학) 哲學(철학)의 연구로서도 위배되는 것이 아니고 크게 부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평한 판단을 내려 앞에 두 이론에 의해, 기독교는 사람의 지혜가 몽매하던 미개시대의 胎動(태동)한 불합리한 논리이며, 불교의 이론은 인간의 지혜가 이미 발달한 세상에 부합하는 推理論(추리론)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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