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서
옛 것이 그립고 정든 것 사라지는 것이 아쉽고 그립다.
사라진 것이 그리운 것은 사람 뿐만 아니고 유형, 무형의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하다.
한번 떠나버린 것은 이 우주공간에 다시 오지 않으니 그립다한들 어떻게 그리움을 재가 되도록 태울 수가 있을까?
감정과 이성은 늘 다르다.
사라진 연탄 방 난방을 보고 감정은 새벽에 더 따뜻해지는 안방 아랫목이 그립다하지만, 이성은 가스 중독의 위험이 있고 탄 갈기가 불평한 연탄에 무슨 미련이 있다하고 반기를 든다.
떠나버린 배우자를 두고 감성은 그립다 그립다하고 마음 아파하지만, 이성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올 영원한 길을 갔는데 어리석게 연연하지 말라 하고 단호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와 같이 감성과 이성의 갈등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물 흐르듯 앞만 바랍고 잘도 살고 있다.
논리적 설득은 의미가 공허할 때가 많은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이성은 그때 끄 환경에 따라 달리 나타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어나는 느낌에 지배를 받을 뿐이지 음과 양이 서로 배척하면서도 교감하고 있듯 양 극단은 떨어질 수 는 없는 근본적인 합일체 일지도 모른다,
생과 사, 선과 악, 밤과 낮 등등 서로 상반된 모든 것들의 근원은 더듬어 올라가면 하나로 귀일할지 모른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제 발등에 불덩어리가 떨어져 있고 살고 있는 집이 화택(火宅) 인데도 다른 걱정을 하고 있는 일상이 아닌가?
진실하지 않으면 좋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머물지 않고 훌쩍 떠나 버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을 살려 늘 진실 되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에는 마음의 둥지가 필요한 것이다.
조류의 수컷은 입과 발로서 어렵게 둥지를 지어서 암컷을 맞이한다.
수컷 매미가 날개가 부서지라 목청을 돋우는 경우도 같다. 인간의 갈애(渴愛)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을 얻으려는 필사의 노력이다.
미인(美人)이란 얼굴이 보기 좋게 생긴 거라고 감성(感性)은 말한다.
그러나 이성은 뼈에 살이 어떻게 붙어 있는 차이에 따라 미인도 되고 추인(麤人)도 된다고 냉정하다.
제 눈의 안경이 이를 잘 방증해 주고 있다. 내가 좋은 면 미인이고 내가 싫으면 미운 것이다.
이성에게 끌리는 힘은 음양의 당김이지 외모나 감언이설 같은 화술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외모에 구애받지 아니한다. 사랑에는 이성(理性)이 필요로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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