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숙 밭의 추억
서숙은 조의 안동지방 방언이다. 조를 잘 모른다 해도 조밥은 잘 알 것이다.
조는 오곡의 하나이니 5,000년 역사에서 선조들께서는 조밥을 무척 많이 드셨을 것이다.
내게는 조보다는 서숙이 정감이 가는 용어이다. 소싯적에 땡볕에 앉아서 조밭을 솎아 나갈 때 무척이나 힘이 들고 더웠다.
일하기가 싫어서 서숙 밭을 조금 매다가 얼른 반대 편에서 솎아 오는 척도 했다. 서숙이 누렇게 익어서 석양을 받으면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인데도 사진이나 그림으로 작품을 남긴 경우를 보지를 못했다.
시골 큰 밭에는 서숙을 많이 재배하였다.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잘 익어서 고개 숙인 서숙의 황홀한 모습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치 그 모습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축 늘어진 서숙은 개꼬리 같기도 하지만 남근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류는 좁쌀은 잘 먹지만 쌀은 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니 좁살이 쌀보다 몸에 좋을 지도 모른다.
지금도 칼국수 집에 가면 어디서 구해 왔는지 쌀에다 좁쌀을 석은 밥을 주는데 가끔은 먹을 만하다.
옛날에 조밥 이라하면 쌀은 한통도 없고 좁쌀로만 밥을 지었는데, 미조는 찰기가 없어서 밥을 먹을 때 조심하지 않으면 다 흘러버린다.
그러나 배고픈 시절, 한 톨의 조밥도 흙이지 않고 용캐도 다 잘 먹어왔다.
쌀이 귀한 실절 처녀가 시집을 갈 때까지 쌀을 한 말도 못 먹고 잡곡만 먹었던 슬픈 사연이 있었다. 주로 조밥과 보리밥으로 연명하던 시절의 눈물겨운 얘기다.
죽을 쑤면 그릇에 얼굴이 비출 지경으로 멀것다.
손님이 오면 쌀독의 쌀이 바닥나면 살림을 사는 아낙네는 근심거리가 늘어난다.
천수답이어서 가뭄이 극심한 해는 장리(長利) 쌀에 의존하는데 고율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빌린 쌀의 1년 이자가 50%나 된다. 양반은 보리밥을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지금 시골의 전답은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서 묵히는 것이 많이 늘어났다. 농사를 지어도 수지가 맞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쉽게 지을 수 있는 작물을 택했는데 밭농사는 주로 땅콩과 서숙을 제배했다.
일찍 밭 나락씨를 구해서 밭에다 벼를 제배한 적도 있다. 양배추와
토마토도 길은다. 토마토는 서양냄새를 풍기지만 최고의 영양채소였다.
소싯적에 없던 방울토마토가 흔해진 세상이다.
석양에 산골 밭에 잘익어서 고개 숙인 서숙의 모습을 올해는 꼭 사진에 담아 도시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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