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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因果理法論(인과이법론) 6

청남

 

 

因果理法論(인과이법론) 6

 

6. 인연중 異熟因(이숙인)異熟果(이숙과)

논함.

 

인연 가운데 異熟緣(이숙연)에 의해 異熟果(이숙과)를 얻는다는 것은 어떤 인과법인가 살펴보면, 이는 앞에서 논한 俱有因(구유인) 相應因(상응인)과 같이 同時性(동시성)의 인과법이 아니고, ()은 반드시 앞이고, ()는 반드시 뒤에 나타나는 異時性(이시성)의 인과법이다.

 

또 앞에서 논한 同類因(동류인) 遍行因(편행인)과 같이 ()()同類(동류)가 되지 않고, () 그 자체와 () 그 자체가 서로 다른 異類(이류)인 인과법이다.

 

그리하여 우리 불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걸쳐 善惡(선악)의 인과를 논하고, 삼세에 걸쳐 苦樂(고락) 昇沈(승침)을 논한다. 迷惑(미혹)해서 고통에 빠지는 것도 인과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참된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도 모두가 因果(인과)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이 바로 이 異熟因(이숙인) 異熟果(이숙과)의 인과법을 응용한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세간의 학문에서는 이런 것 까지 깊이 연구 하는 것이 필요 없지만, 불교를 연구하고 道義(도의)를 실행하려한다면 이 異熟因(이숙인) 異熟果(이숙과)를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인과법이다.

그래서 이를 3항으로 나누어 더 자세히 논하려 한다.

 

1異熟(이숙)語義(어의).

 

異熟(이숙)이란 말은 原因(원인)과 다른 結果(결과)調熟(조숙)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異熟(이숙)이란 結果(결과) 쪽을 가리키는 말이라 定議(정의)한다.

 

그런데 어떤 原因(원인)異熟(이숙)이라는 結果(결과)를 나타내게 하는 原因(원인)이라면, 原因(원인)에도 異熟(이숙)이란 말을 붙여 異熟因(이숙인)이라고 한다.

 

그러면 무엇과 무엇이 다른 것을 異熟(이숙)이라 하는가, 하고 그 原因(원인)을 살펴보면, 상의한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야기된다.

()() 두 종류에 국한해서 추구해 보면, ()이라고도 할 수 없고 ()이라고도 할 수 없는 無記(무기)가 바로 異熟(이숙)이 될 것이다.

이미 ()() 혹은 ()이며, ()無記(무기)인 고로, 이것을 因是善惡果是無記(인시선악과시무기)異熟(이숙)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을 ()이라 하고, 어떤 것을 ()이라 하는가 하면, 미래에 자신을 이익 되게 하고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행위를 ()이라 하고, 미래에 자신을 손상하는 화근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행위가 그러한 행복의 ()를 가져오고 또 어떤 행위가 화근을 불러올까?

道理(도리)에 합당한 공정한 행위는 미래에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고, 이와 반대로 道理(도리)에 배반되는 부정한 행위는 미래에 禍害(화해)를 불러 온다고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선악을 구별하는 표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선악의 分界(분계)의 정의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밤이나 낮이나 종일토록 思慮分別(사려분별)과 마음이 정하는 意志(의지)에 끌려 다니며, 의지 표출의 대표 격인 신체수족의 운동과, 입술과 혀로 나오는 말을 하는데, 거기에는, ()이라 할 수 있는 행동도 있을 거고, 또한 ()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체 그 자체와 그 신체에 걸쳐진 의복이나 기구 등에는, 혹은 우리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혹은 즐겁게도 하지만, 그것에는 다만 好惡(호악)의 감각이 있을 뿐, 이를 ()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들은 無記(무기)라고 하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이런 사실을 마음에 두고 살펴보면, 세상 인간 가운데는 타고나면서 가난한 자도 있고 부자도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있으며, 건강한 사람도 있고 허약한 사람도 있어 천태만상 각양각색으로 달라 하나도 같은 자가 없는데 그 所以(소이)는 이 異熟因(이숙인)이라 하는 善惡(선악)의 두 ()이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초래된 異熟果(이숙과)도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매일 밤낮으로 틈틈이 선을 행하지 않는 일은 없지만, 그 대부분의 행동은 악을 행하며 나날을 보내기 때문에, 내세에 이 異熟因(이숙인)에 의한 因果(인과) 법칙에 따라 어떠한 異熟果(이숙과)의 고통을 받을는지 알 수가 없다.

 

그르므로 아무리 작은 ()이라도 행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고, 아무리 작은 ()이라 행하면 아니 된다는 것이 이 인과법이 알려 주는 큰 가르침이다.

 

2. 業因(업인)의 종류.

 

앞에서 말 한 것과 같이 異熟因(이숙인)이란 우리들이 밤낮 종일토록 身口意(신구의)로 짖는 善惡(선악)()이 바로 그것이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의 作業(작업)은 세력이 미미해서 미래에 중대한 결과를 불러 오는 일이 없지만, 선과 악의 作業(작업)은 그 세력이 강대함으로 미래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 異熟因(이숙인)에 의해 異熟果(이숙과)를 얻는 다는 인과의 법이다.

 

예를 들면, 그 나라의 법률에 위배되는 事業(사업)을 하면 拘禁(구금)당하는 果報(과보)를 면하기 어렵고, 반대로 아주 좋은 일을 많이 했을 때는 정부는 이를 포상하고 사회도 이를 찬탄해서, 그 일신에 많은 영광을 받게 된다. 그러나 남보다 뛰어난 좋은 일도 하지 않고, 또한 법률을 범하는 나쁜 짓도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생업에만 열중하는 사람은, 구금도 당하지 않고 포상도 받지 않는 것과 같이, 우리들 몸의 身口意(신구의) 세 곳에서 행하는 선악의 作業(작업)도 미래의 결과를 일으키는 功能(공능)이 있기 때문에, 作業(작업)() 이라는 이름을 붙여 業因(업인)이라고 하며, 業因(업인)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引業(인업), 또 하나는 滿業(만업)이라 한다.

 

引業(인업)이란 人間(인간)에서 말한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인류 일반에게 보편적으로 통하는 類同的(유동적) 결과를 이끌어 오는 業因(업인)을 말 한다.

 

가령 선천적으로 타고난 智者(지자)天才(천재)도 있고, 우둔한 자도 있으며,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고, 귀인도 있고 천인도 있어 각양각색이지만, 이러한 차별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는 공통점의 總果報(총과보)를 이끌어서 발생하게 하는 原因(원인)引業(인업)이라고 한다.

 

다음에 滿業(만업)이라 하는 것은 引業(인업)潤色(윤색)해서 () () 피차 천태만상으로 차별되게 하는 作業(작업)이 바로 이것이다.

 

이를 달리 설명하면, 引業(인업)은 모든 것에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고, 滿業(만업)差別(차별)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같은 인류를 혹은 지혜로운 자로 하고 혹은 어리석은 자로 하고, 혹은 부자로 하고, 혹은 가난한 자로도 하고, 혹은 귀한 자로도 하고, 혹은 천한 자로하고, 아름다운 자로도 하고 못생긴 자로도 하는 등 각양각색 구구하게 차별하는 것이 이 滿業(만업)의 힘이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밤을 심으면 밤이 나는 것과 같이 심은 것과 같은 종류의 열매를 결실하는 것은 콩을 심고 밤을 심었다는 引業(인업)의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콩이라 해도 줄기, 가지, 잎 등이 굵고 가는 것도 있고, 꽃과 열매에도 다소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어, 5포기는 5포기, 10포기면 10포기 모두 다른 것은 그 심은 종자 이외에, 토질 기후 비료 등의 영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우리들 인간에 있어서도 人類(인류)라는 성질을 받은 것은 過去世(과거세)에서 받은 引業(인업) 때문이다.

또한 같은 인간이라도 각자의 일생이 () 不幸(불행)하고 또한 사람마다 재능이나 운명이 다른 것은 모두가 過去世(과거세)滿業(만업)에 의해서 潤色(윤색)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 不幸(불행)의 현상이 있다 해도 하늘을 원망 할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허물을 돌릴 것도 아니다. () 不幸(불행)은 모두가 자신이 만든 業因(업인)에 의해 받는 果報(과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 하면, 혹자는 인생에 智愚(지우) 貧福(빈복) 貴賤(귀천) 美醜(미추) 등의 차별 현상이 있는 것은, 그 사람의 遺傳(유전)敎育經驗(교육경험) 여하에 의한 것이며, 어찌 전생 과거의 지은 ()에 의한 것인가 한다.

 

물론 遺傳(유전)의 영향과 교육경험의 영향도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마다 달라지는 원인이 생후의 여러 조건들과 아무 관계없이 다만 생전인 과거의 業因(업인)으로만 그 원인이 된다는 것은 印度(인도) 고대에 있었던 宿作因外道(숙작인외도)의 설로서 우리 불교의 교설이 아니다.

불교의 ()은 생전인 과거의 業因(업인), 생후인 현재의 業因(업인)이 서로 합쳐서 인생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결과가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적인 견해로 이를 살펴보면, 宿作因(숙작인)과 같이 다만 생전 과거의 業因(업인)으로만 생긴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偏見(편견)이다.

또한 서구의 철학자와 같이 생후 현재세의 유전과 교육으로만 생긴다고 보는 것도 역시 일종의 편견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많은 대중들을 두고 논할 때는 실로 인생의 () 不幸(불행)遺傳(유전) 敎育(교육) 順應(순응)등에 의하여 달라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중 소수의 사람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면, 동일한 遺傳(유전)에 동일한 교육을 하고, 동일한 경험을 하게 해도 그 사람의 天稟(천품)이 같아진다고 할 수 없고 () () () () 모두 달라지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또한 교육도 없고 경험도 없는 젖먹이 어린 아기들도 서로 다르고 천태만상 모두 다른 것은 무슨 원인에서 일까.

 

이것은 생전인 과거세의 業因(업인)과 관계가 있다고 밖에 말 할 수 없고, 달리 어떠한 철학자도 여기에 대해 明快(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는 顯幽(현유) 兩界(양계)에 통하는 인과론이고, 서구의 學理(학리)顯界(현계) 一世(일세)에 한한 因果論(인과론)이다, 라고 말 한다.

 

3感果(감과)時期(시기).

 

前項(전항)에서 논한 바와 같이, 우리들의 身口意(신구의)三處(삼처)에서 만들어진 善惡(선악)()에는 引業(인업)滿業(만업) 두 종류가 있다 했다.

引業(인업)이든 滿業(만업)이든 그 결과를 나타내는 시기를 辨別(변별)하면 4가지 종류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順現受業(순현수업) <同世受果業(동세수과업)>

(2) 順生受業(순생수업) <異世不隔生受果業(이세불 격생수과업)>

(3) 順後受業(순후수업) <異世隔生受果業(이세격생 수과업)>

(4) 順不定受業(순부정수업) <不定業(부정업)>

 

이 가운데 제1 먼저에 順現受業(순현수업)이란, 우리 들이 태어난 이후에 造作(조작)()으로서, 죽을 때 까지 그 결과를 느끼며 사는 ()을 말 한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현재 이 세상에서 ()原因(원인), 果報(과보)結果(결과)를 모두 다 받고 경험하는 인과법이다.

즉 소년시절에 받는 교육경험 여하에 따라, 장년이 된 다음, 혹은 智者(지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愚者(우자)가 되기도 하며, 혹은 귀인이 되기도 하고 혹은 가난한 자가 되기도 하는 등등 여러 가지 다양한 결과를 보게 되는 것은 모두 이 인과법칙의 현상이다.

 

2順生受業(순생수업)이란 현재 지금 이 一世(일세) 중에 지은 ()의 원인과, 받는 果報(과보)의 결과가 다 나타나는 因果(인과)가 아니고, 造業(조업)受報(수보)가 그 ()를 달리 하는 因果法(인과법)이다.

()를 달리 한다 하지만, 중간에 一世(일세)를 뛰어 넘어 隔世(격세) 하는 것이 아니고 造業(조업)한 그 다음 ()受報(수보)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우리들이 지금 이 現世(현세)에서 善惡(선악)()을 지은 그 과보는, 죽은 다음 즉시 이 果報(과보)를 받게 되는 것을 順生受業(순생수업)이라 한다.

 

3順後受業(순후수업)이란, 造業(조업)(), 受報(수보)()同世(동세)이기는 하지만 그 중간에 반드시 一世 이상 數世(수세)를 거친 뒤에 그 과보가 나타나는 인과법이다.

가령 우리들이 지금 이 현세에서 善惡(선악)()을 지어도 그 果報(과보)現世(현세)에 전연 나타나지 않고, 또한 다음 ()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며, 一世(일세) 二世(이세) 三世(삼세)를 지나는 사이 그 중간에 一世(일세) 이상의 간격을 둔 다음에 그 결과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順後受業(순후수업)이라고 한다.

 

4順不定受業(순부정수업)이란 앞에 3종과 같이, 造業(조업)의 결과를 同世(동세)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는 造業(조업) 다음 ()에 꼭 그 결과가 나타난다 하는 것도 아니고, 혹은 一世(일세) 이상 간격을 둔 다음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며,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서는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어는 때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 정해진바가 없는 因果法(인과법)이다.

그래서 이를 不定業(부정업)이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정으로 業因(업인)을 짓고도, 果報(과보)가 나타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는가? 하고 묻는다면, 이는 지은 ()이 그리 크지 않고 미미하거나, 또는 ()을 지은 뒤에 善業(선업)을 많이 했다면 惡因(악인)이 소멸 또는 그 세력이 약해 질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을 지은 뒤에 惡業(악업)을 더 많이 지으면 善因(선인)이 소멸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말한 이 4종류의 ()의 구분으로 불교의 因果說(인과설)妄用(망용)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세간에 많은 불교신자들을 살펴보면 불교의 因果說(인과설)妄用(망용) 하는 病弊(병폐)가 있다.

 

妄用(망용) 한다는 것은, 그들은 인간만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모두 과거 전생의 業因(업인)으로 돌리며, 현세에서의 교육도 위생도 건강도 모두 모두 다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저것도 宿世(숙세)의 약속이고, 이것도 전생의 인연이라고, 모든 일을 무턱대고 前生(전생) 過去(과거)業因緣(업인연)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이 진정한 불교의 인과설이라 생각하고 불교를 믿고 실천한다면, 이는 불교의 因果說(인과설)을 잘 모르고 妄用(망용)한 것이라고 단언 한다.

 

그들은 실로 진정한 불교인이 아니고, 고대 인도의 宿作因外道(숙작인외도)의 노예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진정한 불교의 인과설은, 앞에서 ()한 바와 같이 과거 전생의 業因(업인)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生後(생후)의 교육경험의 정도, 위생관렴의 정도, 행위의 선악의 정도 등등이 모두 그 사람 일생에 壽命(수명) 禍福(화복) 智愚(지우) 貧富(빈부) 등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것이 順現受業(순현수업)의 인과법칙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불교의 인과설을 배우면서 이를 잘못 해석해서 妄用(망용)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宿作因外道(숙작인외도)의 노예가 되어 그 몸을 망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異熟因(이숙인) 異熟果(이숙과)의 법칙은 이런 것이 아니니, 이를 바로 잘 알고, 더욱 상세한 것을 알려면 俱舍論(구사론) 業品(업품)을 보기 바란다.

 

7增上緣(증상연) 가운데 能作因(능작인) 曾上 (증상과).

 

다음 四緣(사연) 가운데 增上緣(증상연)으로 曾上果(증상과)를 얻는다는 것은 어떠한 인과법인가를 살펴보면, 이는 앞에 5절에서 논한 것과 같은 5개의 인과법에 빠져 있는 것은 모두 이 四緣(사연) 가운데서 增上緣(증상연)이라 하고, 六因(육인) 가운데서는 能作因(능작인)이라 할 수 있는 原因(원인)을 갖는 것이고, 五果(오과) 중에서는 曾上果(증상과)라 할 수 있는 結果(결과)를 나타내는 因果法(인과법)이다.

 

그래서 이 인과법은, 앞에서 설해 온 것 보다 대체로 그 구역이 廣大(광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大小事(대소사)를 막론하고 하나의 現象(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여기에는 直接的(직접적)이고 親密(친밀)空間(공간)俱有因(구유인) 혹은 相應因(상응인)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時間上(시간상) 으로는 同類因(동류인) 혹은 遍行因(편행인) 異熟因(이숙인)이 되는 것도 있다.

 

또한 간접적으로 그 결과를 위한 원인이 되는 것도 다양한데, 그 간접적으로 원인이 되는 것은 모두 四緣(사연) 중에 增上緣(증상연)이고 또한 六因(육인) 중에 能作因(능작인)이다.

 

하나의 결과를 나타내는데 그 결과 자체를 제외하면 전 우주계의 萬有(만유)가 모두 그 原因(원인)이 되는 것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을 밝혀보면, 대체로 3 종류로 分類(분류)된다.

 

첫째로, 直接的(직접적)으로 密接(밀접)하게 强壓的(강압적)인 세력을 주는 原因(원인)이다.

이를 俱有因(구유인)五種(오종) 因果法(인과법)이라 한다.

둘째는, 間接的(간접적)으로 疎遠(소원)하고 劣弱(열약)하게 영향을 주는 原因(원인)이다. 이를 與力增長(여력증장)能作因(능작인)이라 한다.

 

셋째는, 직접적으로 세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한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며, 다만 그 결과가 나타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坐視(좌시) 傍觀(방관)하는 상태인 原因(원인)이다. 이를 無力不障(무력부장)能作因(능작인)이라 한다.

 

눈으로 ()好惡(호악)을 인식하려 할 때, 복잡한 신경 조직과 눈의 근육과 網膜(망막) 작용 등에 의하여 視覺(시각) 작용이 일어나는데, 이런 것이 俱有因(구유인)에 의해서 同一果(동일과)를 얻는 것이다.

또한 神經(신경)網膜(망막)이 정신작용을 할 수 있게 힘을 주고, 공간과 광선이 시각작용을 도우는 것 등은 與力增長(여력증장)能因作(능인작)資力(자력)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것을 제외하면 전 우주계의 일체만물은 모두가 無力不障(무력부장)能作因(능작인)이 되는 것이다.

어째서 인가하면 지금 視官(시관)()의 호악을 인식할 때 모든 萬有(만유)는 모두 방관하며 조금도 방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들이 방해를 한다면 시력 기관은 그 기능을 발휘 할 수 없는데, 그것들이 방관하며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視官(시관)은 그 기능을 나타낼 수가 있다.

그래서 이 방해를 하지 않는 곳에도 또한 原因(원인)이 되는 意義(의의)가 있는데 그것은 ()이든 ()이든 결과를 나타내게 하는데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因緣(인연) 等無間緣(등무간연)所緣緣(소연연)을 살펴보면, 俱舍論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이를 六因(육인) 외에 것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六因(육인) 중에 能作因(능작인)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8成實宗(성실종)에 의거한 因果法(인과법) 槪要(개요).

 

小乘敎(소승교)原因(원인) 結果(결과)의 법칙을 밝히는데 앞에서는 俱舍論(구사론)에 의거 因果法(인과법)大要(대요)를 논하였다. 지금은 成實論(성실론)에 의거해서 인과법의 법칙을 나타내려 한다.

 

成實論에서는 인과법을 四緣三因(사연삼인)으로 분류하고 별도로 結果(결과)의 분류는 하지 않고 있는데 구사론의 四緣六因(사연육인)配置(배치)되는 표를 揭示(게시)하여 그 대의를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俱舍論(구사론)四緣(사연)成實論(성실론)三緣(삼연)은 그 이름이 다르다 해도 뜻은 같다.

그래서 四緣(사연)에서는 俱舍(구사)成實(성실)에서 異論(이론)이 없다고 한다.

俱舍(구사)成實(성실)에서 異論(이론)이 없을 뿐만 아니라 四緣(사연)은 본래 佛說(불설)이기 때문에 小乘(소승) 20종의 宗派(종파)는 모두 이것을 응용하고, 大乘(대승)의 여러 종파에도 역시 이를 응용하는 매우 소중한 법칙이다.

 

 

그런데 因緣(인연)을 나누어 三因(삼인)으로 하기도 하고 또한 五因(오인)으로도 하는 것은, 종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데, 이는 다만 開合(개합)의 구별로 된 것이며 원 뜻에는 변함이 없다.

 

成實論(성실론)에 의거 因緣(인연)을 나누어 三因(삼인)이라 할 때, 첫 번째의 生因(생인) 이라는 것은 결과를 낳는데 큰 세력으로 작용하는 강한 힘을 갖는 原因(원인)을 말 한다.

 

불교는 세간의 학문과 달라서 인간내부에 존재하는 무형적 정신이 만유 일반을 지배하는 것이라 하고, 우리들 內外(내외) 兩界(양계)의 모든 현상은 모두 내부 정신상의 행위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라 하기 때문에, 生因(생인)이라 하는 것도 원래 內部(내부) 정신상의 선악행위에서 채택한 것이다.

 

우리들이 현재에 격고 있는 () 不幸(불행), ()()등 온갖 현상의 결과는, 그 원인을 찾아보면 모두가 過去世(과거세)에서 ()한 자기 행동의 탓이고, 또한 우리들이 現世(현세)에서 행하는 ()不善(불선)의 모든 행위는 모두가 未來世(미래세)에서 우리가 받게 될 () 不幸(불행), () 혹은 災禍(재화) 등 여러 가지 결과를 나타내게 하는 原因(원인)이 된다.

이를 일컬어 生緣(생연)이라 한다.

生緣(생연)은 선악의 행위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生緣(생연)에 속한다.

 

다음 두 번째 習因(습인)이라하는 것은 곳 慣習力(관습력)을 말 한다.

대체로 인간은 예술이나, 學術(학술)이나, 道義(도의), 威儀(위의)나 모두가 慣習力(관습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慣習力(관습력)도 불교에서는, 그 사람이 태어난 이후의 慣習(관습)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 生前(생전)인 과거의 여러 世間(세간)에 지은 관습으로 人生(인생) 각자의 天性(천성)狀態(상태)가 구구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한다.

 

사람들의 天稟(천품)과 성질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의 일에 영리해도 ()의 일에는 둔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의 조건에는 영리해도 ()에는 어리석은 것처럼 각자의 성질과 능력과 천품이 모두 다른 것은 모두가 과거 數世間(수세간)慣習(관습)이 바로 원인이 되어 이루어진 결과이다.

 

노동자는 신체골격이 노동을 하는데 잘 견디도록 태어났지만 사고능력에는 모자라고, 學者(학자)는 사고 논리에는 우수해도 체형이 노동하기에는 부적합하도록 생긴 것은 모두가 다 慣習力(관습력)이 이룬 결과이다.

이를 習因(습인)이라 한다.

 

그 다음 依因(의인)이란 앞에서 말한 俱有因(구유인) 相應因(상응인)과 비슷하다.

 

萬有(만유)() () 피차 동시에 서로 依存(의존)하여 능히 資助(자조)가 되기도 하고 資助(자조)하기도 하며, 능이 依託(의탁)하고 依託(의탁)받는 바가 되어, 각자의 지위를 보존해 나가는 것은 모두 이 依因(의인)의 힘에 의한 것이다.

 

小乘敎20종으로 분파되었다 하지만, 우리 한국에 전래 된 것은 俱舍(구사)成實(성실)이 주류를 이루므로, 우리는 俱舍(구사)成實(성실) ()에 대해 因果法(인과법)의 대요를 논한 다음에 나아가 大乘敎(대승교)의 인과법 大要(대요)를 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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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동 출신의 문인들의 논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리자 05-01-03 24756
820 길21.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13일 청남 24-01-13 112
819 길11 (2).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12일 청남 24-01-12 92
818 길10 (3).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11일 청남 24-01-11 78
817 길10 (2).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10일 청남 24-01-11 95
816 구름2.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9일 청남 24-01-10 736
815 구름1.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8일 청남 24-01-10 128
814 고가섯1.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7일 청남 24-01-07 366
813 경치-댐 (6).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6일 청남 24-01-06 111
812 경치1.jpg 마음 밝히는 명언 365일, 1월 5일 청남 24-01-05 94
811 고가유적3.jpg 陋室銘(누실명) 劉禹錫(유우석)작 청남 23-12-06 111
810 고가유적2.jpg 蘭亭集詩(난정집시) 王羲之(왕희지) 청남 23-12-06 87
809 고가유적1.jpg 蘭亭集序(난정집서) 王羲之( 왕희지) 청남 23-12-06 80
808 바다10.JPG 佛敎(불교)의 實踐(실천). 4 청남 23-11-08 158
807 바다8.JPG 佛敎(불교)의 實踐(실천). 3 청남 23-11-08 88
806 바다7.JPG 佛敎(불교)의 實踐(실천). 2 청남 23-11-08 74
805 바다6.JPG 佛敎(불교)의 實踐(실천). 1 청남 23-11-08 89
804 바다5.JPG 實大乘(실대승)에 있어서 因果原理(인과원리). 청남 23-11-08 76
803 민속박물관 (32).jpg 權大乘敎(권대승교)에서 因果法則(인과법칙). 4. 청남 23-11-07 80
802 민속박물관 (27).jpg 權大乘敎(권대승교)에서 因果法則(인과법칙). 3. 청남 23-11-07 70
801 민속박물관 (26).jpg 權大乘敎(권대승교)에서 因果法則(인과법칙). 2. 청남 23-11-07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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