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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내면과 외면의 세계

청남

 

 

내면과 외면의 세계 

 

 

우리들이 눈을 뜨면 넓고 끝이 없는 광활한 공간 속에 만물이 교차하며 존재하는 外界(외계)의 현상을 볼 수 있다.

 

또 눈을 감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여러 가지 奇奇(기기) 妙妙(묘묘)한 불가사의한 정신 작용을 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內界(내계)에서 요동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外界(외계)에 나타나서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현상을 총괄해서 사물이라 하고, 그 내면에서 동요하는 것을 總合(총합)하여 ()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色心二法(색심이법)이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이를 다시 분석해보면 물질계에는 크게 유기물과 무기물로 나누고, 또 동물과 식물로 나누어진다.

 

외계는 해와, , (일월성신) , , 초목(산하초목) , , 금속, 조류, 짐승, 물고기 등으로 나누어지고, 도한 사람의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몸에서는 皮膚(피부) 筋肉(근육) 血液(혈액) 生殖器(생식기) 神經(신경) 등 여러 가지 잡다한 것으로 나누어지고, 이를 다시 더 분석하고 분석할 때는 천 가지 만 가지로 갈라져 끝에는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게 될 정도로 많아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世間(세간)의 법에서도 철학의 법에서도 다 같다.

 

마찬가지로 물질계가 천 가지 만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과 같이 내면에 있는 마음의 세계에서도 그와 같은 현상과 작용으로 분석하면, 천 가지 만 가지 여러 가지 다양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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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작용을 대체로 知情意(지정의)3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정의란 인간의 정신 활동의 근본 기능인 지성(知性감정(感情의지(意志)’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도 또한 여러 가지 다양한 현상이 있음을 알 수 있고, 감각작용을 통해 외계의 사물을 인지하는 覺智(각지) 속에도 千態萬象(천태만상)한 작용이 있다.

 

喜怒哀樂(희노애락) 속에도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이 있어서, 결국 우리들의 心象(심상; 즉 감각 기관의 자극 없이 의식 속에 떠오르는 인상)에 일어나는 현상도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世間(세간)의 법에서도 철학의 법에서도 모두 같으며 실로 복잡하고 끝이 없는 것이 우주의 온갖 사물에 일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광대무변한 萬象界(만상계)를 공간적 견지에서 ()으로 생각해서, 우선 크게 物心(물심) 相互(상호) 관계는 어떠한가를 살펴본다.

天體(천체) 地界(지계) 人獸(인수) 草木(초목) 등이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 하게 존재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한 방울의 물, 한 개의 작은 먼지도 그 分子(분자) 元素(원소)가 서로 抱合(포합)해서 흩어지지 않는 것은 어째서 일까.

그리고 또한 이를 시간적인 ()으로 생각해도 이와 같은 無邊(무변)의 만물이 짧은 刹那(찰나), 일초의 작은 시간에서, 천 년 만 년, 만만년 내지 무량 영겁의 긴 시간에 속에서, 前時(전시) 後時(후시)를 통해, 有機物(유기물)生滅(생멸) 起伏(기복)하며, 無機物(무기물)도 상태가 변하며 무량 영원한 ()의 긴 시간에 항상 그치지 않는 것은, 대체 어떠한 이유에서일까.

 

반드시 여기에는 ()()에 일정불변한 法理(법리)가 있을 것이다.

말을 바꾸어 말하며, 萬物(만물)에는 그 ()이 될 만한 法理(법리)와 그 ()가 되는 法理(법리)가 있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이를 사람들은 지혜가 발달됨에 따라 그 근본원리를 알고자 하고 또한 깊게 생각하며 연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학은 이를 實驗(실험)으로 검토 연구하고, 哲學(철학)理學(이학)의 연구로 얻어지는 결과로서 연구하고 있으며,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究竟(구경)의 원리를 論究(논구)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根本理法(근본이법)을 과학에서 찾거나 哲學(철학)에서 찾거나 또한 불교에서 찾는다 해도 이를 한마디로 포괄하면 原因(원인)結果(결과)의 관계라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因果(인과)萬象(만상)普遍(보편)되는 理法(이법)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예를 들면 因果(인과)란 물리학자는 어떤 물질이라도 거기에는 대소 長短(장단) 등 형상에 상관없이 반드시 引力(인력)이라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즉 인력은 모든 물질에 보편적으로 다 작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법칙이 곧 因果(인과)이다.

 

그래서 이 因果(인과)理法(이법)이라고 한 이유는, 이와 같은 因果(인과)의 규칙은 본래 ()이 창조한 것도 아니고, 또한 ()이 규정한 것도 아니고, 더욱 우리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다.

만일 학자가 철학 사상으로서 이를 ()하고 연구하여 論理(논리)極點(극점)에 도달한다면, 모두가 萬有(만유)一心(일심)이나, 혹은 萬象(만상) 裏面(이면)에 존재하는 不可稱(불가칭) 不可說(불가설) 不可思議(불가사의)妙理(묘리) 妙體(묘체)가 본래의 性能(성능)이며 만물을 現象(현상)하게 하는 자연의 規律(규율)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바로 이 因果(인과)天然(천연)理法(이법)이며,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우리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 因果理法(인과리법)을 움직일 수 없다.

과거로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미래로 永劫(영겁)을 뻗어가도 항상 존재하고 그치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因果理法(인과리법)이다.

또한 이 인과는 萬象(만상) 遍通(편통)理法(이법)인 고로 宇宙萬象(우주만상)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이 규범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두가 이 因果理法(인과리법)에 따라 그 位置(위치)를 차지하고, 그 형상을 나타내며, 그 특유의 作用(작용)을 하고 있다.

무릇 하늘의 日月星辰(일월성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찬란한 빛을 내며 늘어서 있는 것도 인과이며, 지상의 산천초목이 그 형상을 달리하면서 빽빽하게 존재하는 것도 인과이다.

봄이 오면 찬란하게 꽃이 피는 것도 인과이며, 가을이 오면 나무가 낙엽지고 웅크리는 것도 인과이다.

혹은 강 언덕에 파도소리가 나는 것도,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도, 혹은 社會(사회)興亡存敗(흥망존패)가 있는 것도, 한 개인에게 貧富貴賤(빈부귀천)이 있는 것도, 봄에 꾀꼬리가 지저귀는 것도, 여름철 제비가 나는 것도 모두가 因果理法(인과리법)의 법칙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이 인과규칙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눈으로 을 보지 못하고, 귀로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손으로 사물을 잡을 수 없으며, 발로서 길을 걸어 갈 수도 없다.

고로 인과는 萬象遍通(만상편통)理法(이법)이라는 것은 어떠한 學理(학리)도 부인 할 수 없는 大磐石(대반석)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위에서 말 한 바와 같이 因果(인과)萬象(만상)에 두루 통하는 理法(이법)이므로 진실로 思想(사상)으로서 萬象(만상)을 연구하고, 道理(도리)로서 생각하는데도, 혹은 宗敎道德(종교도덕)의 길을 논할 때도, 모든 원리의 궁극적 설명에 이르러서는, 因果(인과)理法(이법)을 떠나서는 설명의 방법이 없다.

 

그러나 옛날에는 因果(인과)라던가 業報(업보)라던가 하는 말을 들으면, 불교적 냄새가 나는 말이며, 스님들의 말투라고 하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학자도 종교인도 다 같이 이 因果(인과)라는 말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옛날에 불교 전용의 용어가 오늘날에는 世間普遍(세간보편)의 용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디서라도 쓰는 보편적인 말이지만, 지난날에는 佛敎(불교) 專用(전용)의 용어였던 고로 佛家(불가)에서는 힘써 이 因果(인과)의 학설을 주창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불교 통상의 因果敎理(인과교리)를 말하고자 함에 앞서, 우선 佛敎(불교)因果說(인과설)을 상세하게 설명한 다음, 불교 일반의 교리를 논하고자 한다.

 

대체로 因果(인과)라는 말은 불교를 대변하는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因果(인과)라고 하는 한마디 말이 불교전체를 대변 한다고 하는 말은, 필자의 私見(사견)이 아니고, 이미 天台大師(천태대사)께서 인과를 ()으로 하고, 實相(실상)()로 한다.라 하였고, 賢首大師(현수대사)께서는 法界(법계)緣起(연기)는 실로 불가사의한 因果(인과)에 있다.로 설하였으며, 또한 嘉祥大師(가상대사)內道(내도) 外道(외도)의 구별을 因果(인과)正邪(정사)로서 나누었고, 正因正果(정인정과)를 설하는 것을 佛敎(불교)라고 하였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불교를 평하여 因緣敎(인연교)라고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하 本書(본서)에서는 宗敎道德(종교도덕)實行(실행)에 관해서 필요한 부분의 因果法理(인과법리)를 차근차근 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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