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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불교와 기독교와의 對照論(대조론) 2

청남

 

불교와 기독교와의 對照論(대조론) 2

 

 

) 無始因果論(무시인과론)有始因果論(유시 인과론)

 

불교는 無始因果論(무시인과론)이고 기독교는 有始因果論(유시인과론)이라는 말은, 대체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인도 불교에서 찾아봐도, 또한 서양철학에서 구해 봐도 만물의 相依(상의)에 관해서 () ()이 피차 對望(대망)해서 同時同尅(동시동극)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논하는 것과, 또한 만물이 연달아 이어서 일어나면서 前現象(전현상)後現象(후현상)을 대조해서 異時異刻(이시이각)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논하는 학설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전자를 空間的(공간적) 혹은 同時因果(동시인과)라고 말하고, 후자를 時間的(시간적) 혹은 異時 因果(이시인과)라고 한다.

 

이와 같이 時間空間(시간공간) 同時異時(동시이시) 두 가지 인연이 있는 가운데 우선 同時性(동시성)인 인과에 관하여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은 미뤄두고, 후자 즉 異時性(이시성) 인과에 관하여 불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을 논하고자 한다.

 

대체로 불교에서 말하는 異時因果(이시인과)理法에서는, 原因(원인) 이전에 또 그 原因(원인)原因(원인)이 있다고, 結果(결과) 뒤에 또 그 結果(결과)原因(원인)으로 하는 다른 結果(결과)가 있고 주장한다.

그래서 原因(원인)原因(원인), 原因(원인)原因(원인)으로 계속 찾아가서 過去(과거)過去(과거), 또 그 過去(과거)過去(과거)로 자꾸 자꾸 찾아 올라가서 천년만년 억만년 내지 무량겁의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마지막으로 여기가 제일처음의 原因(원인)이라고 하는 것을 찾아도, 原因(원인)原因(원인)이 되는 것이 또 있을 수 있어서, 原因(원인)의 시발점을 찾는 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만일 그 시발점이 있다고 한다면 萬物因果(만물인과)의 큰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그 이유는 모든 原因(원인), 原因(원인) 이전에 있었던 어떤 原因(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原因(원인) 없는 原因(원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原因(원인)은 그 原因(원인)을 발생 시킨 그 앞 단계의 原因(원인)이 있다고 하는 論理(논리)에서, 결국 萬物無始(만물무시)라고 단안을 내리는 것이 바로 佛敎(불교)이다.

 

原因(원인)이면서 結果(결과)를 낳지 아니하는 것이 없듯이, 結果(결과)로서 原因(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없고 또한 다른 結果(결과)原因(원인) 아닌 것도 없기 때문에, 結果(결과)結果(결과), 結果(결과)結果(결과)로 찾아 가, 미래로 永永(영영)()을 뻗어가도, 이것이 最終(최종)結果(결과)라는 것에 도달 할 수도 없다.

그래서 無始(무시)萬有(만유)는 또한 無終(무종)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교이다.

 

이를 요약하면 萬有(만유)는 과거로 억겁을 거슬러 올라가도 結果(결과)를 만들지 않는 1原因(1원인)이라는 것은 없으니 그 始發(시발)이라는 것은 없다.

또한 미래로 永劫(영겁)을 뻗어나가며 찾아 봐도 原因(원인)이 되지 않는 結果(결과)가 없으니, 그 끝도 없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萬有(만유)一連(일련)의 결과라고 본다면, 과거 일련의 萬有(만유)는 그 原因(원인)이 될 것이고, 또한 그 앞에 있었던 일련의 만유를 原因(원인)으로 해서 일어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전개해서 과거의 과거 또 그 앞을 찾아가도, 궁극적인 萬有(만유)의 시발점에 도달 할 수는 없다.

 

또한 지금의 萬有(만유)一連(일련)原因(원인)이 된다고 본다면, 미래로 또 미래로 나아가도 그 때의 萬有(만유)에서 발생되는 일련의 原因(원인), 또 다른 結論(결론)原因(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계속 미래로 나가도, 결국 여기가 萬有(만유)의 종점이다, 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萬有(만유)因果理法(인과리법)을 기준으로 推論(추론)하면 끝도 시작도 없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의 설은 이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千變萬化(천변만화)하는 세상 여러 현상에 대해 萬物創造(만물창조)라는 해석을 내리면서, 결국 天地萬有(천지만유)는 모두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萬有(만유)는 과거의 만유가 그 원인이 되고, 그 과거의 만유는 또 그 앞에 만유가 원인이 된다고, 계속 거슬러 올라가, 마지막에 만물이 처음 생겨나게 한 제일원인에 도달하게 되면,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이 만유 발생의 제1원인이라는 설이다.

그들은 이미 ()을 만유창조의 제1원인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만유에 그 시작이 있다고 하는 그들로서는 그 시작이 있었으니, 미래를 생각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릇 시작이 있는 것은 모두 그 끝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만유에 시작이 있다는 것은 잘 말하면서도 그 종점에 대해서는 잘 논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두 교리를 비교해서, 불교는 無始因果論(무시인과론)이고 기독교는 有始因果論(유시인과론)이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교와 기독교가 각각 주장하는 설을 달리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느 것을 진정한 이론이라고 택할 것일까.

 

두 종교의 범주를 떠나, 세간의 일반적 學理(학리)事實(사실)을 갖고 둘을 비교해서 그 우열을 가리고자 한다.

 

우선 물리학의 실험결과로서 정해진 物質不滅(물질불멸) 勢力保存(세력보존)의 법칙을 보기로 들어 양자의 우열을 판단해 보려한다.

 

이미 物質不滅(물질불멸) 뿐만 아니라 그 물질에 함유된 에너지까지도 영원불변이라는 것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반적 상식이 다.

그래서 만유를 無始無終(무시무종)이라고 주장하는 불교의 설은 이 이론과 너무나 잘 부합한다.

 

그런데 만물은 신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인해 ()에서 創造(창조)되었다고 하는 기독교의 주장은 이 물질불변의 이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물질불변의 원리로서만 둘을 비교하면, 불교는 합당하고, 기독교는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들은 신이 이 세상을 창조 한 것이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인도 중국 한국 등 각국의 역사로 살펴보거나, 지금까지 연구한 人類學(인류학)地質學(지질학)의 실험 결과로 보아도 실로 어리석은 주장이며, 인도의 大自在天(대자재천)이나 梵天(범천)을 신봉하는 교파에서조차 그러한 망언은 하지 않는다.

 

가령 천지창조를 약 6,000년 전이라 하고, 또한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신이 우주를 창조하는데 原質(원질)이 되는 것을 무엇에서 얻었을까? 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으로 ()에서 ()를 만들었다.”라고 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라는 존재는 천지창조 이전에 자연히 생겨나 있었던 것인가?

또한 自力(자력)으로 스스로 생겨난 존재일까?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천지이전에 자연히 존재한 것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천지 이전에 본래 자연에 있었던 ()이 외 약 6,000년 전에서야 처음으로 만물을 창조하였던가?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은 신령하여 우리들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그 뜻을 알 수 없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인과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독교의 유시인과론은 理法(이법) 이외의 다른 불합리한 논리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물이 증발해서 구름이 되고, 구름이 변해서 비가 되고, 빗물이 다시 처음에 물이 되고, 그 물이 다시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변화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인과론이다.

다만 물은 구름과 비의 원인이 될지라도, 그 구름과 비가 물의 원인이 되는 일은 없다, 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인과론이다.

 

또 탄불에서 재가 생기고, 재가 변해서 흙이 되고, 흙이 변해서 초목이 되고, 초목이 타서 다시 탄이 되어 불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인과론이다.

탄이나 장작이 재나 흙의 원인이 될지라도, 그 흙과 재가 다시 탄이나 장작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인과론이다.

 

또 곡식의 씨앗에서 싹이 트고, 싹에서 뿌리와 줄기가 생기고, 줄기와 가지에서 잎이 나고 꽃이 핀다. 이 꽃에서 다시 씨앗이 생겨난다, 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인과론이다.

곡식의 원인은 줄기와 가지 등일 뿐, 잎이나 뿌리가 곡식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인과론이다.

이상으로 미루어 불교와 기독교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것일까, 하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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