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밝히는 명언
7월 9일
화랑도
화랑도의 정신은 한민족 고유의 전통과 이념의 발로로서
지금도 우리 피 속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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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는 조직과 수양을 통하여 독특한 기질과 기풍을 지녔다. 즉 위 로는 국가를 위하고 아래로는 벗을 위하여 죽으며, 대의(大義)를 존중 하여 의에 어긋나는 일은 죽음으로써 항거하고, 국가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함을 찬양하며, 오직 앞으로 나갈 뿐 뒤로 물러섬을 부끄 럽게 여겨 적에 패하면 자결할 망정 포로 됨을 수치로 아는 등 장렬한 기백과 씩씩한 기상을 함양하였다.
화랑도는 그 독특한 무사도로 유명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시기에는 화랑뿐 아니라 낭도나 일반 명사들까지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무사도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화랑 출신의 장군 들이 모범을 보였다. 660년 김유신(金庾信)장군 인솔 아래 백제를 공격 할 때 신라군의 사기를 드높인 화랑 관창(官昌)․반굴(盤屈)의 용맹과 672년 김유신의 아들인 화랑 원술(元述)이 석문전투(石門戰鬪)에서 당 (唐)나라 군사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용맹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진평왕 때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제정한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신라 화랑의 지 도이념을 대표하고 있다. 충(忠;事君以忠)․효(孝;事親以孝)․신(信;交友以信)․용(勇;臨戰無退)․인(仁;殺生有擇)의 5계 가운데 그들이 특히 소중하게 여긴 덕목은 충과 신으로서, 이것은 시대적으로 화랑도의 제정부터 삼국통일까지가 신라 역사상 국난기였던 것과 관련이 깊다. 화랑도는 삼국항쟁이 치열 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진흥왕 때 제정되어 삼국통일을 이룩할 때가지 크게 활기를 띠었다.
시대는 바뀌었어도, 나약해진 우리 청소년들에게 기존의 많은 교육 단체들이 화랑정신을 계승해서 씩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교육해 나가야 할 것이 바라직하다. -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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