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拾遺(좌습유)을 지내면서 杜甫(두보)
至德(지덕) 2년, 安祿山(안록산)은 그의 아들 安慶緖(안경서)와 李猪兒(이저아) 때문에 살해되었고, 2월에 肅宗(숙종)은 鳳翔(봉상)으로 行所(행소)를 옮겼다.
오래 전부터 長安(장안) 탈출은 꾀하던 杜甫(두보)는 드디어 그 기회를 포착해서 4월 어느 날, 金光門(금광문)으로 빠져나가 鳳翔(봉상)으로 달려갔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산 속을 통해 사람이 없는 길을 몰래 숨어서 갔는데, 鳳翔(봉상)에 다다랐을 때는 옷은 다 해지고 짚신도 떨어져서 거지와 같은 꼴이었다.
그런 꼴로 杜甫(두보)는 玄宗(현종)을 배알했다. 5월 16일, 肅宗(숙종)은 杜甫(두보)를 左拾遺(좌습유)로 임명했다. 左拾遺(좌습유)는 從八品(종팔품)의 낮은 관직이고 天子(천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은 諫(간)하는 일을 하는 직책인데, 杜甫(두보)는 그 직분에 만족하였다.
그러나 늘 바른말을 간하는 杜甫(두보)를 肅宗(숙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8월에 그에게 휴가를 주어 鳳翔(봉상)에서 鄜州(부주)에 있는 가족 곁으로 歸省(귀성) 시켰다. 杜甫(두보)는 중대한 자신의 직책을 잠시라도 떠나기를 싫어했지만 鄜州(부주)에 있는 가족을 만나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였으므로 가족 곁을 향해 길을 떠났는데, 그 여행에서 戰亂(전란)에 휩쓸린 지방을 지나고, 지나가는 피난민들을 만나며, 들에 뒹굴어져 있는 많은 전사자의 백골들을 생생이 보았다.
그 여행에서 杜甫(두보)는 여러 가지 감화를 받고 많은 名詩(명시)를 지었다.
그 뒤 肅宗(숙종)이 行所(행소)를 떠나 長安(장안)에 들어갔는 소식을 들은 杜甫(두보)는 11월에 長安(장안)으로 다시 가서 左拾遺(좌습유)의 직책으로 出仕(출사)하는 몸이 되었다.
그러다가 다음해 6월, 짧은 長安(장안)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가슴에 안고 華州(화주) 司功參軍(사공참군)으로 전임되어 시골로 전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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