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州(화주)에서 杜甫(두보)
宮廷(궁정)에 출사하며 左拾遺(좌습유)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도, 임군을 堯舜(요순)과 같이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평소의 이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조정 정치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차츰 궁전에 출사하는 것도 실증이 나서 매일 曲江(곡강) 가에 나가 술로서 세월 보내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杜甫(두보)는 華州(화주)라고 하는 시골에 司功參軍(사공참군)이라는 말직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華州(화주)는 陜西省(협서성) 華山(화산) 아래 있는 마을로, 거기서 杜甫(두보)의 생활은 낮에는 파리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밤에는 전갈 때문에 놀라며, 끝없이 밀어닥치는 산더미 같은 문서 속에 파묻혀 미칠 것만 같은 생활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長安(장안) 궁전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인민들의 괴로운 생활을 바로 눈앞에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관리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해이를 느끼게 되었고, 점점 더 현실사회와 접하고 서민의 고통을 노래하는 위대한 民衆詩人(민중시인)이 되어 갔다.
그러던 중 杜甫(두보)는 관리생활의 무의미함을 뼈저리게 알았다.
그리하여 華州(화주)의 사공참군직을 팽개치고 從姪(종질)이 사는 秦州(진주)로 가게 된다. 그때 이후 杜甫(두보)는 평생 정든 고향인 洛陽(낙양)에 다시는 못 가고, 또한 중을 때까지 수도 長安(장안) 땅을 밝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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