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웅석(雌雄石)이야기(안동)
일명 불알바위(아들바위)와 치마바위라고 한다. 와야천(臥野川)을 사이에 두고 국도 왼편 대(臺) 위에 있는 것은 불알바위이고, 그 맞은편에 있는 것이 치마바위이다. 불알바위는 자연석 위에 남근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것이며, 치마바위는 커다란 암벽이 넓게 펼쳐져 있어 치마형상으로 보이는데 이들 유적은 선사시대 다산신앙과 관련된 거석문화유산(巨石文化遺産)으로 보인다. 바위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다음과 같다.
옛날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걱정하는 어떤 부자가 살았는데, 어느 노파가 이야기하기를 도대(합강) 남쪽에 있는 바위 앞에서 오랫동안 치성을 드리면 귀한 옥동자를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부잣집 며느리가 바위 앞에서 정성을 드렸더니 태기가 있어 아들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이 없어 고민하는 아낙들 이 기자를 위해 이 바위 앞에서 치성을 올렸다고 하여 이 바위를 아들바위로 부르게 되었다 고 한다.
매그내, 매구내 말바우·마암(馬岩)이야기
매그내, 매구내는 보티 안마에서 북서쪽에 있는 말바우 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고개로 안동부 의 주산 가운데 하나인 영남산의 맥(脈)이 이곳에 와서 맺었다고 하여 '안동 명지(名地)는 논둑이 명산(名山)이다'라는 말이 구전된다. 또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이곳의 혈(穴)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말바우·마암(馬岩)은 와룡면사무소에서 북쪽으로 2.5km쯤 가면 길 좌측 안동소주 홍보관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 길로 진입하여 작은 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가면 말바우 마을이다. 이 마을은 청주정씨(淸洲鄭氏)와 선성이씨(宣城李氏)들이 대대로 세거해온 마을로 약 400년 전 첨정(僉正)을 지낸 죽헌(竹軒) 정두(鄭枓, 1508∼1576) 공이 입향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공은 원래 지금의 와룡면 지내2리의 모산(茅山)에 살았으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연산군 말엽에서 중종 연간에 이곳으로 이사하였다.
또한 선성이씨들이 이 마을에 살게 된 것은 이대인(李大仁) 때부터인데 공은 죽헌의 사위가 되어 처가동네인 이곳에 살게되어 선성이씨 와룡 입향조가 되었다. 청주정씨가 이 마을에 입향할 때의 전설이 마을에 전한다. 죽헌 공이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로 결심하고 집터자리를 둘러보니 수백년의 기지가 될 만한데 큰 바위가 있어서 옮길 방도가 없어서 주야로 걱정하던 차에 꿈에 왠 노인이 나타나서 현몽을 하였다.
"내일 이 앞으로 초립동(草笠童)이 한사람이 말을 타고 지날 터이니 정성을 다해서 대접하면 치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음날 과연 꿈속 노인의 말대로 초립동이 지나가므로 정성을 대해 대접하였더니 초립동은 말에게 죽을 배불리 먹인 뒤 큰 바위를 번쩍 들어 말 등에 싣고 동구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만 바위를 실은 말이 얼마 못 가 넘어지면서 말은 지고 있던 바위에 깔려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로 인하여 사람들은 말이 옮기다만 그 바위를 마암 말죽통을 버린 논을 통배미, 말삼정을 버린 곳을 삼정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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