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성사 거북바위[경북경산 지]
-거북바위의 목을 자르니 붉은 물로 변해-
환성사는 신라 흥덕왕 10년(AD 1351)에 41대 현덕왕(賢德王)의 아들인 심지왕사가 이 절에 주지로 있으면서 창건 하였다 한다.
그 후 고려 말에 화재로 인해 일부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13년에 신감대사가 증수 하였고 광무원년에 선월대사가 다시 고친 후에 1973년에 해체 보수 하였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대웅전과 수월관(水月觀)그리고 신검당과 요사채 등이 원형대로 잘 복원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심지왕사가 절을 짓고 난 후부터 갑자기 절이 번창하기 시작하여 하루에도 수백명이 넘는 신도들이 드나들어 잠시도 한가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절에서는 매일같이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해 대려니 이에 소모되는 곡식도 곡식이려니와 취사에 시중드는 식솔 또한 엄청난 숫자가 상시 고용되어야만 했다.
고려때 이 절의 주지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또 한 번 이 절에서 위대한 선사가 났으므로 사찰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일주문을 세우고 대웅전 앞쪽에 큰 연못을 파 누각을 짓고 이름을 수월관이라 했다. 이는 달이 떠 연못에 비치는 광경을 수월관에서 보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이 선사께서는 수월관 앞의 연못을 보며 '만일 이 연못을 메우면 이 절의 불기(佛氣)가 쇠하리라.‘하고 예언했음으로 역대 주지 스님들이 이 연못을 소중히 관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수백년이 지나니, 이 이야기를 아는 이가 적어지고 전설처럼 희미한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또한 절 입구에는 큰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거북이와 너무 많이 닮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심지왕사가 이곳에 절터를 잡을 때 이 바위를 보고서 이 바위가 있는 한 이 절은 쇠하지 않을것이라 하였는데 이 또한 희미한 기억속의 전설이 되었다. 때는 조선 초에 불교를 심하게 억압했으나 환성사만은 하루도 신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한 스님이 이곳에 주지로 있으면서 젊어서는 큰 덕으로 불자들의 숭앙을 받았으나 늙어서는 게으름이 늘어 손님이 많은 것이 귀찮게 되어 혼자 곰곰히 생각한 끝에 사람을 시켜 절 입구의 거북바위의 목을 자르게 했다.
거북바위의 목을 정으로 깨뜨리니 갑자기 연못의 물이 붉게 변하여 이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절이 오히려 더 소란해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거지같은 객승이 찾아와 묵고 가기를 청하니 주지가 이를 귀찮게 여기며 구석진 골방을 주고 음식 접대도 제대로 하지 않자 이튿날 객승이 길을 떠나면서
‘이 절에 사람이 많은 것은 저 연못 때문이니 저것을 메우시오.’하고 말했다. 주지는 이 말을 듣고 즉시 마을 사람들을 불러 연못을 메우게 했다.
그런데 흙을 한 삽 퍼붓자 갑자기 연못 속에서 금송아지 한마리가 날아 오르더니 슬피 울고는 산넘어 동화사쪽으로 날아갔다 한다. 동네 사람들은 겁을 먹고 더 이상 메우려 하지 않자 주지는 절의 사람들을 동원해 메우게 했다.
꼬박 백일이 걸려 연못을 메우고 마지막 한 삽 흙을 퍼붓자, 갑자기 온 절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그 웅장하던 건물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겨우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았으나 그 이후로는 절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은 당시에 남은 건물들이 보물로 지정되고 또 현재 주지스님이 원형을 잘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새로 사찰이 부흥하기에 이르렀고 신도들의 발길 또한 눈에 띄게 늘어 나면서 영험이 있는 사찰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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