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甫詩集(두보시집)
陸渾莊(육혼장)에서 杜甫(두보)
開元(개원) 29년(741) 齊(제)와 魯(노) 지방 여행에서 돌아온 杜甫(두보)는 洛陽(낙양)과 偃師縣(언사현) 중간 지점인 首陽山(수양산) 아래에 陸渾莊(육혼장)을 지었다. 거기는 遠祖(원조) 杜預(두예)의 묘와 조부인 杜審言(두심언)의 묘가 있었다. 그는 거기서 부인 楊氏(양씨)와 결혼을 했다. 양씨는 司農少卿(사농소경) 陽怡(양이)의 딸이다. 이 부인은 그의 일생의 반려자이며, 일생 환란을 함께 하였다. 특히 安史(안사)의 난 이후 杜甫(두보)가 유랑생활을 할 때도 부부가 함께 서로 위로하면서 한없는 고생을 같이 했다.
처에 대한 杜甫(두보)의 사랑과 애정은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나타났으며, 잠시라도 해어질 때는 항상 처자를 생각하고 애정이 담긴 시를 지었다. 그리고는 대부분 처자를 거느리고 많은 산하를 넘어 유랑의 길을 갔는데, 杜甫(두보)가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가족에 대해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라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무렵, 그는 시험에 낙방해서 전도는 암담하고 희망이 사라지니 억제할 수 없는 강인한 정신은, 대상을 골라 날카롭고 예리한 시가 되었다.
그 당시의 그의 시는 다른 많은 시인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묘한 말의 장난이 아니고, 대상의 참 모습에 깊이 접근하고, 형상 그 뒤에 숨어 있는 정신을 포착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시에는 아직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인민의 괴로움을 노래하며, 자신의 깊은 시름을 호소하는 그의 후반의 詩想(시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 시절의 시를 2, 3편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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