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安生活(장안생활) 杜甫(두보)
天寶(천보) 5년, 杜甫(두보)는 洛陽(낙양)에서 長安(장안)으로 갔는데, 그 뒤 약 10년 간 수도에서 미관 말직도 얻지 못한 체 가난과 주림으로 고난의 생활을 이어갔다.
이 무렵 조정에서는 玄宗(현종)이 오랜 정치에 실증이 났고, 계속되는 평화에 마음이 해이해져서 다만 눈앞 향락에만 빠지고, 道敎(도교)에 마음이 쏠려 신선을 동경하며 불로장생의 길을 구하고자 할 뿐 나라의 정치는 宰相(재상) 李林甫(이임보)에게 위임해서 정치는 문란하고 간신 배는 들끓었다.
또한 玄宗(현종)은 사랑하는 惠妃(혜비)를 잃고 상심하던 중, 요염하고 아리따운 楊貴妃(양귀비)를 얻게 되었다. 貴妃(귀비)에는 삼 명의 자매가 있었는데 그 모두가 夫人(부인)으로 책봉되고, 형제들도 모두 발탁되어 양씨 일가의 세력은 비길 바 없이 높아 졌으며 정치에도 입김이 세어졌다.
이때 또 다른 한 세력이 북방에 대두되었는데, 바로 安祿山(안록산)이었다.
이런 사이에 杜甫(두보)는 여러 번 관직에 나갈 것을 시도 해 봤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심한 가난을 더욱 그를 괴롭혔다.
천보 14년 갑자기 河西縣(하서현)의 尉(위)로 발탁이 되었는데 縣尉(현위)는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수락하지 않자 다시 右衛率府(우위솔부)의 參軍(참군)으로 임명되었다. 비록 말직이기는 하지만 우선 추위와 주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두보는 이 소식을 갖고 奉先(봉선)에 있는 처자에게 갔다. 그리하여 長安(장안)을 출발해서 驪山(여산)을 지나 渭水(위수)를 건너 북쪽으로 향했다.
이런 가운데 처자를 거느리고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 도중 그가 보고 느낀 광경과, 자신의 슬픈 운명, 사회의 불안과 인민의 고통 등 한없는 마음의 시름을 읊은 것이 저 유명한 500자의 詠懷長詩(영회장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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