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 juntonggahun@naver.com
관광명소 안동의 시와 가사 안동의 민속 안동인의 논단 우리의 설화 전설과 해학
>> 안동소개 > 우리의 설화


[일반 ] 古典(고전)의 吟味(음미) 貞夫人(정부인) 安東張氏(안동장씨) (2)

청남

 

 

古典(고전)吟味(음미)

 

貞夫人(정부인) 安東張氏(안동장씨) (2)

 

앞장에서는 貞夫人(정부인) 安東張氏(안동장씨)에 대한 출생과 가계에 대하여 살펴보고 또 어릴때 지었다는 시도 한수 설명하였는데여기서는 부인의 성장과 출가그리고 주부로써의 활동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1. 貞夫人(정부인)聖人吟(성인음)

 

聖人吟(성인음)이라는 시는 옛 성현의 높은 모습을 칭송 한 시로서 장少女(장소녀)가 생각했던 성현의 흠모와 거기에 이르고저했던 마음을 알수있는 시이기도 하다.

 

不生聖人時(불생성인시)

不見聖人面(불견성인면)하고

聖人言可聞(성인언가문)하야

聖人心可見(성인심가견)이라.

 

성인의 시대에 태어나지 못해서

성인의 모습을 뵙지못했으나

성인이 남긴 말씀을 들을수가 있어

聖人의 마음을 가히 알수가 있다

 

이를 이역하면 聖人이라는 분도 보통 사람과 다를바가 조금도 없고, 聖人만이 가져야하는 특유한 것이 있다면은 우리는 그분을 배울수도 없겠으며 그모양,그언어도 다를것이 없을것이다.

보통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행신하는바가 다른것이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일용으로 모두 도리를 지키고 있는것이니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걱정할것이고 애써 배우면은 무엇이 어려운 것이 있겠는가?

내가 성인의 시절에 나지도 듣지도 만나지도 못했지만 공부와 수양으로 성인의 마음을 볼수있다.고 했으니 애써 배우면은 누구도 훌륭한 성인이 될 수있다는 굳은 신념을 엿볼수 있다고 하겠다.

 

. 出嫁(출가)媤宅(시댁)

 

장씨소녀는 열아홉 나이에 석계 이시명의 아내가 되었다.

때는 광해군 8년 서기 1616년이었다. 石溪(석계) 李時明(이시명) 선생은 안동에서 200여리 떨어진 동해안에 가까운 영해부의 나릿골 仁良里(인량리)載寧李氏(재녕이씨) 가문의 사람이였다.

이시명은 나이가 27세의 청년으로 장부인보다는 8세나 위인 사람이다.

그는 이미 9년전인 선조 40년 안동 예안현 오천리의 명문인 光山金氏(광산김씨) 近始齋(근시재) 金垓(김해)의 사위가 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에 아내를 잃었다.

장부인은 자신보다 8살이 위이고 아내와 사별한 뒤를잇는 재취부인이 된것이고 거기에다 남편에게는 여섯살되는 아들과 두살나는 딸하나가 있었으니 11녀의 계모가 된셈이다.

경당 장흥효선생이 귀여운 외동딸을 이시명의 후처부인으로 또 전처의 소생이 있는 계모로 시집보내게 되었던데는 여러가지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敬堂(경당)은 나이가 53세로 그의 학문과 덕행은 영남에 널리 알려져 많은 문도가 모여 큰 학당을 이루고 있었다.

사위가 된 이시명은 이때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있는 의욕있는 젊은이로 패기가 넘치고 있었으며 그때에 이미 소장학자로 그틀이 잡히어 가고 있으니 경당 장흥효가 크게 기대를 한 젊은이었던 것이다.

敬堂(경당)은 장차 자신의 학문을 계승하여 줄만한 능력이 충분하게 감추어져 있는 청년으로 石溪(석계) 李時明(이시명)을 믿었던 것이고 내심으로는 경당자신의 학문적 연원을 계승하여 후세에 빛낼수 있는 사람으로 알고 특별히 아끼며 힘주어 가르치고 있던 문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대치가 자신의 무남독녀로 하여금 나이가 여덟이나 위이고 11녀의 아버지인 이시명선생에게 19살의 딸을 출가시키는 용단이 내려졌으리라고 본다.

또 옛날 법도로보아 양반집 규수가 시집을 가는데는 전취냐, 후취냐? 하는것이 가문과는 큰 상관이 없었고 그 맞이하는 사위의 인간성과 품격이 높은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좋은집 규수를 맞이할수있는 시대이었던 것이다.

또 장부인 같은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총명은 이러한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것이고 거기에 맞이하는 청년 이시명도 그만한 人 物이었던것이니 천정의 배필이라고 생각할수있었다.

 

여기서 소녀 장부인을 재취부인으로 맞이하게 된 석계 이시명 선생에 대하여 알아본다.

李時明(이시명)은 선조 23년 서기 159011월에 영해의 仁良里(인량리) 나릿골에살며 宜寧縣監(의령현감)을 지내고 대대로 벼슬하고 학문하는 집안인 載寧李氏(재녕이씨) ()의 셋째 아들로 태여났다.

어려서부터 노는 모습이나 공부하는 모습에서 才氣(재기)가 넘쳤으며 동리의 어른들이 時明(시명)소년의 행동거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총명하고 진취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晦叔(회숙)이라했고 호를 石溪(석계)라하였다.

石溪(석계) 李時明(이시명)18세가 되던해 宜寧縣監(의령현감)으로 부임하는 아버님을 따라 아버지의 임지로 갔다.

마침 忘憂堂(망우당) 郭再祐(곽재우)선생이 오셔서 석계의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는 탄시을 하며 하시는 말씀이

벼슬하는 부형을 따라와서 지내는 자제들은 대개가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내는것을 봤는데 지금 자네의 지조가 이러듯 높으니 가히 그 무리와는 몇 갑절 높은 품위를 느끼는구나라고 하였다.

이렇듯 훌륭하신 아버님의 지도와 자신의 총명예지를 발휘할수있는 석계 선생의 소년시절을 우리는 본받아야할것이다.

 

3. 張夫人(장부인) 子女(자녀) - 七賢子(칠현자)

 

그는 앞에서 말하였지만 초취부인이 낳은 11여와 장부인께서 낳은 62여를 합쳐서 칠남3여를 양육시켜낸 이른바 현모양처의 주인공이었다.

이 칠남삼녀를 간략하게 소개드리면은 초취의 아들은 이름이 尙逸(상일)이고 翼世(익세)라했으며 靜黙齋(정묵재)라하였다. 장부인이 시집오기 5년전 광해 31611년에 출생했으며 장성하여서는 학문과 덕행이 크게 이루어 참봉으로 천거된 학자이기도 하였다.

張夫人이 처음낳은 아들은 이름이 徽逸(휘일)이고 翼文(익문)이라 했으며 存齋(존재)라고 스스로 하였다.

장부인이 시집와서 3년되는 해인 광해 111619년에 출생했다. 장성하였서는 학문과 덕행이 크게 이루어 洪範衍義(홍범연의)라는 정치학의 큰 저술을 남긴 대학자이기도 하였다.

張夫人 30세 되던해에 셋째 아들을 낳으니 그해가 인조 51627년이다.

이분이 葛庵(갈암) 李玄逸(이현일) 선생으로 翼升(익승)이라했다.

石溪(석계) 李時明(이시명)에게는 셋째아들이고 장부인에게는 둘째로 출생한 아들이다.

갈암선생은 숙종조에 학행이 널리 알려져 벼슬이 이조판서까지 이른 어른으로 영남학파의 학맥을 이어온 한국성리학상 가장 뚜렷한 학자의 한분이시다.

장부인이 낳은 셋째 아들은 이름이 崇逸(숭일) 인데 부인이 시집오고 15년이 되던 해인 인조91631년에 출생했다.

應中(응중)이라 했으며 恒齋(항재)라 불렀고 학문과 덕행으로 추천되어 벼슬은 세마현감을 지냈으며 학문과 덕행이 높았다고 한다.

또 넷째 아들은 이름이 靖逸(정일)이고 인조 131635년 출생했다.

景羲(경희)이며 定于齋(정우재)이다.

학문이 높았으며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다섯째는 이름이 隆逸(융일)이며 子躍(자약)이고 平齋(평재)라했다.

經世家(경세가)이며 예학에 밝았다.

여섯째는 이름이 雲逸(운일)이며 子眞(자진)이고 廣鹿(광록)이라했으며 문장을 잘했다고 한다.

전처소생의 딸은 余國獻(여국헌)에 시집보내 훌륭한 부녀로 고을에서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뒷날에 학문하던 분들이 장부인이 낳고 키운 칠형제를 七賢子(칠현자)라 불러서 모두를 칭송이 자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의 女中君子(여중군자)가운데 현모이고 양처이며 문장가는 있어도 張夫人(장부인)처럼 많은 아들을 낳아서 하나같이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또 자신은 언제나 숨어서 남을 돕고, 자신이 익힌 학덕을 늘 겸손하게 감추고저 했던 어른은 좀처럼 없었다.

여기에 貞夫人(정부인) 安東張氏(안동장씨)의 놀라운 면모가 있다고 하겠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 목록
번호 분류 제 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315 단풍 (8).JPG 兵車行(병거항) 杜甫(두보) 청남 24-03-13 30
314 단풍 (6).JPG 貧交行(빈교행) 杜甫(두보) 청남 24-03-13 31
313 능소화5.JPG 高都護驄馬行(고도호총마항) 杜甫(두보) 청남 24-03-11 28
312 능소화4.jpg 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봉증위좌승장이십이운) 杜甫(두보) 청남 24-03-11 30
311 능소화3.jpg 長安生活(장안생활) 杜甫(두보) 청남 24-03-11 29
310 노루귀 (14).JPG 飮中八仙歌(음중팔선가) 杜甫(두보) 청남 24-03-09 49
309 노루귀 (13).JPG 春日憶李白(춘일억이백) 杜甫(두보) 청남 24-03-09 36
308 노루귀 (12).JPG 冬日有懷李白(동일유회이백) 杜甫(두보) 청남 24-03-09 40
307 남천4.jpg 與李十二白同尋范十隱居(여이십이백동심범십은거) 杜甫(두보) 청남 24-03-06 37
306 남천3.jpg 贈李白(증이백) 杜甫(두보) 청남 24-03-06 27
305 남천1.JPG 畫鷹(화응) 杜甫(두보) 청남 24-03-06 33
304 나리6 (2).jpg 房兵曹胡馬(방병조호마) 杜甫(두보) 청남 24-03-02 52
303 나리5.JPG 杜甫詩集(두보시집) 陸渾莊(육혼장)에서 杜甫(두보) 청남 24-03-02 38
302 나리5 (2).JPG 望嶽(망악) 杜甫(두보) 청남 24-03-02 34
301 끈끈이대나무풀3.JPG 登兗州城樓(등연주성루) 杜甫(두보) 청남 24-02-29 33
300 끈끈이대나무풀1.JPG 杜甫詩集(두보시집) 壯遊(장유)의 杜甫(두보) 청남 24-02-29 44
299 꿀풀 (5).JPG 杜甫詩集(두보시집) 盛唐詩(성당시)의 隆興(융흥)과 杜甫(두보) 청남 24-02-29 27
298 24년 인비촬영 (10).jpg 내 나이 청남 24-02-27 28
297 꽃잔디 (1).JPG 明心寶鑑(명심보감) -2. 청남 24-02-24 36
296 꽃양귀비-임.jpg 明心寶鑑(명심보감) -1. 청남 24-02-24 69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