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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古典(고전)의 吟味(음미) 女訓(여훈) (3)

청남

 

 

古典(고전)吟味(음미)

 

女訓(여훈) (3)

 

명현들이 자녀 특히 출가하는 딸을 위하여 훈육한 명언을 알아보는 세번째 장으로 선행록 곧 옛 사람들의 착한 행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1. 宋尤庵先生戒女書(계여서)가운데 善行錄(선행록)

 

宋尤庵先生戒女書가운데 善行錄에 대하여 그중 몇가지를 알아본다.

中國 晉나라 有名孝子王祥(왕상)三國時代 吳나라 사람인 孟宗(맹종)은 부모님께서 병환이 계시어, 겨울에 죽순과 잉어를 구하거늘 맹종은 대밭에 가서 우니 죽순이 눈속에서 자라나고 왕상은 물가에 가서 우니 얼음이 터져 잉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또 중국 春秋時代 晉나라 사람으로 郤缺(극결)은 밭을매고 그 아내와 점심밥을 먹으려할때, 고 그 아내 밥을 눈 위에 들어올려 높은 손님 대접하듯 하였더니, 마침 그곳을 지나던 귀한 손이 그 광경을 보고, 착하고 기특하게 여겨 그 지아비를 벼슬을 시켰다고한다.

또 맹자는 어릴적에 이웃집에서 돼지 잡는것을 보고는 어머님께 그 돼지를 왜 잡는가 물으니 어머님께서 농담으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 먹이려 한다하시고 이윽고 우시며 말씀하시더니, 어린 자식을 속이는 것이 옳지 않다하여 즉시 돼지고기를 사서 아들에게 먹이시었다고 한다.

너가 미성하여 출가하니 늦도록 내곁에 두어 가르치지 못하고 남의 집에 보내니 행세 인사와, 매사를 어찌할줄 모르는 고로 갑갑하고 민망하여 여러가지 소견으로 세세하고 구차히 경계하여 이르니 부디 뼈에 새기고 마음에 적시어서 이책을 일삭 곧 한달에 두세번씩 보아잊지 말라.

곁에 두어 크고 작은 허물에 경계할줄 안다면은 마음이 범연코자 하여도 오히려 범연할수 없으리라.

알아서 이 책을 공경하고 媤家(시가)에가서 큰 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노라.

女子父母에게 할수 있는 가장 큰 孝道自身의 몸을 잘지니고 自身의 허물로 말미암아 父母에게 시비없게 하는것이니라.

네 비록 나의 곁을 떠나 있으나 나의 슬하에 있어 나의 말을 듣는듯 하리라.

부디 명심하라고 우암 先生께서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戒女書(계여서)마지막 節目祭祀지내는 禮儀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그 節次를 모두 말할수없으나 대략 祭祀지내는 順序에 대하여 簡略하게 說明한다.

祭禮(제례)에 대하여는 집집 문중마다 약간식 다른 면을 찾아볼수가 있으나 根本 精神은 같다.

대략 말하면은

첫째: 參神으로 主人夫婦參神하는 모든 사람이 다 再拜하되 再拜하고 婦人四拜하느리라.

둘째: 降神으로 主人禁香再拜하고 잔에 술을 부어 모사에 세번 기울이고 일어나 再培하느니라.

셋째: 進饌으로 執事가 어육과 떡과 국수, 밥과 국을 차례로 진설 하고 물러나니라.

一般的으로 진설할 때 함께하고 이 節目은 생략하게 된다.넷째: 初獻으로 主人이 나아가 考位앞에 잔을 받들어 동으로 향하 여 서면 執事는서로 향하여 서서 서로 향하여 술을 따르 主人이 받들어 故人앞에 드린후 또 妣位앞에 잔을 받 들어 앞과 같이하고 물러나 향상앞에 앉느니라.

그러면 집사는 肝炙(간적)을 올리고 祝官讀祝후에 재배 하느니라.

다섯째: 亞獻으로 주부와 함께 육적을 드리고 초헌하는 와 같이한다.

여섯째: 終獻으로 兄弟나 일가 子孫親賓이 하느니라.

일곱째: 侑食으로 考妣位 술잔에 술을 더 부어서 가득차게 하는 것이라. 이른바 첨주하는 것이다.

主人은 물러나서 재배하고 밥에 수저를 꽂고 <삽시> 나 오니라.

여덟째: 闔門(합문)으로 문을 닫는다는 뜻이다. ()은 고요한 것을 좋아한다하여 祭需을 응감할때는 정숙하게 문을 닫는것이 .

아홉째: 啓門(계문)으로 문을 연다는 뜻이다.

열째: 進茶로 국 그릇을 물리고 숭늉을 드리는 것이다.

이때 밥을 세번 숭늉에 말게된다.

열한번째: 辭神으로 主人主婦 祭祀參席한 사람 모두다 再拜하고 神主合櫝(합독)하여 사당으로 모시고 철상한다.

열두번째: 마지막으로 飮福이다.

祭祀를 마쳤으니 그때 제사지낸 음식을 모두 나누워 먹으 德談도 하며 祖上崇祖思想에 대한것과 大小事의 일 들을 이때 의논한다.

대개 祭祀內外主從(내외주종)하는 일이라 시집을간 들은 꼭 알아두어야 할것이니라.

 

2. 胎敎(태교)

우암先生께서는 위에서 말한 戒女書(계여서)21條目이외에 胎敎에 대하여도 訓育하셨다고하니 그것에 대하여 알아본다.

胎敎(태교)女子胞胎(포태)하였을대 아이를 胎中에 두고 가르치는 교육 방법이다.

胞胎(포태)라는것은 天地自然氣運으로 되거니와 포태 後 十朔(십삭)을 태중에서 자라는것은 그 어머니의 호흡하는 氣運一動一靜을 어머니가 하는대로 받아서 하며 크는 것이니 이 理致를 알면은 어찌 凡然하리요.

短命하고 長壽하는것, 富貴하고 貧賤한것, 미련하고 총명한것, 선하고 악한것, 독한 병이 없는것, 정의롭고 사특한것 등이 모두 그 어머니의 氣運을 받아서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文王母親께서 함에 있어서 마음을 正大하게 가지고 선하게 쓰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유순하게 쓰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기운이 없고, 귀로는 한 소리 음탕한 소리 사특한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눈으로는 악한 빛과 음탕한 빛 사특한 빛을 보지 아니하며, 코로는 악한 냄새 추한 기운을 맡지 아니하며, 입으로는 악한 소리 거만한 소리 사특하고 음탕한 소리를 말하지 아니하며, 방탕히 웃지도 아니하며 나쁜일을 보아도 성내지 아니하고 슬픈 일을 보아도 너무슬퍼하지 아니하며 좋은 일을 보아도 너무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근심스러운 일이 있어도 너무 근심하지 아니하며, 두려운 일을 보아도 너무 겁내지

아니하며, 누워도 바르고 단정하게 하여 만사에 행하는것은 별스럽게 좋고 나쁨이없이 한결같이 正大하여 文王같은 大聖人을 낳았으니, 그 후로 세상사람들이 이르기를 文王은 그 母親胎中에서 賢人을 가르쳤다고 하였다.

 

3. 名賢(명현)胎敎(태교)

동사 列女傳(열여전)에 나오는 말을 살펴보도록 한다.

列女傳曰 古者婦人妊子寢不側하며 坐不邊하며 立不蹕하며 不食邪味하며 割不正이어든 不食하며 席不正 이어든 不坐하며 目不視邪色하며 耳不聽淫聲하고 夜則令 誦詩하며 道正事하더니라 如此則生子形容端正 하며 才過人矣리라.

해설

이문장은 나라 劉向(유향)이라는 사람이 지은 훌륭한 女人들의 傳記를 담은 列女傳에 나오는 태교에 대한 글로써

예전에 婦人子息을 임신하여 잠을 잘때는 몸을 기울게 하지 않으며 앉을때도 치우쳐 앉지 않으며 설때에는 한쪽 발로 기울게 서지 않으며, 사특한 飮食을 먹지 않으며, 바르게 썰지 않은것은 먹지 않으며, 반듯한 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으며, 눈으로는 사특한 빛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밤이되면 소경으로 하여금 詩經을 외우고 바른 일을 말하게 하였다.

이와같이 하여 子息을 낳으면 容貌가 단정하고 才能이 남보다 뛰어나게 될것이다.

다시 말하여서 女子姙娠한 기간동안 가져야 할 몸가짐 즉 胎敎에 관한 內容이다.

요즘 생각으로 보면은 불합리한 內容도 있으나 姙娠中에는 모든 行實을 바르게하고 항상 좋은일, 좋은말, 좋은 음악만을 들으면서즐겁게 지내야만 胎兒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옛날 큰 선비들은 태여나던 날로부터 죽는날까지 이같이 正大한 기운을 平生지키고 행하셨는데 어찌 열달 행하기를 수고롭다 하겠는가?

이일을 행하고 행하지 못하는것이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心柱가 굳센 자는 능히 행하기가 쉬우리라.

그러나 용이 용을 낳고 봉이 봉을 낳는것은 이치에 당연함이니 아무래도 어진 婦人理致를 깨닫기도 쉽고 행하기도 주저하지 않을것이로다.

아무리 옛 사람의 일이라도 이같이 착하고 장한일은 요즈음 사람이라고 본받지 않을수 없는 고로 조금씩 기록하여 特別히 전했으니 이 글을 보고 잊지말고 그와 같이 행하여 대성인을 낳고 보면 産母도 장하려니와 이 말을 전한 사람또한 生光(생광)이니 부디 잊지말고 행할지라이렇게 송우암先生戒女書胎敎에 대한 訓育을 끝맺음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훌륭한 名賢들의 敎訓을 물려받은 君子之國, 禮儀之國으로 불러 왔던 우리 民族의 작금 실정이란 한편으로 (어려운 으로 보면) 人倫을 저버리고 서로를 不信하고 한푼의 利益을 위해 다투고 심지어는 사람을 해치는, 그야말로 末世的인 모습으로 나타나고있다.

이때야 말로 심각하게, 오늘의 사회적인 병이 어디서 始作되었는가를 깨달아 어떻게하면 이 병을 치유 할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고 치료해야 할것이다.

우리 모두 다 함께 중차대한 기로에서 과감하게 떨치고 일어나 도약의 21世紀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도록 합시다.

東洋的女性觀(여성관)

 

앞장에서 名賢들이 出嫁하는 딸에게 訓育하여 경계한 글을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女性 自身들이 연마한 作品을 소개하고 특히 東洋的特徽이라고하는 女性賤視思想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1. 女性蔑視思想(여성멸시사상)

 

우리나라 古代史를 살펴보면 女子賤視思想이 만연되어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多少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男尊女卑의 습관이 尙存하고있으니 社會發展次元에서 속히 고쳐져야 할것이다.

이에 우리 女人들이 살아온 過去簡略하게 정리해 본다.

우리나라의 古代女人史라면은 哀恨女人史라고 할수있다.

수천년동안의 그 베일을 벗기고, 우리 古代女性들이 살아온 참모습을, 한을 품은 그들이 느끼며 생각한 깊은 內面世界閨房 깊은곳을 파헤쳐 千年의 이끼와 두터운 먼지를 털어버리고 알알이 닦고 낱낱을 등불에 비춰 보기로한다.

歷史主體者이며 人間의 그 절반을 찾이한 女性일진대, 이 더할수 없고 덜할수도 없는 절대치인 두개의 文化創造者中에서, 半分을 찾이하는 要素는 다름 아닌 女性이었다.

女性이 어떤 모습으로 成長하고 배우고 그리고 男性結合하여 生活營爲했는가? 또는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하는것을 아는것은 重要한 문제이다.

그것을 아는데 있어서도 女性에 대해서는 記錄을 남길 기회마저 주지 않았으니 유일한 길은 그들 自身이 남긴 文學作品을 더듬어 보는수 밖에 없는것이다.

은 있되 이름이 없든 女性 그 아버지는 알되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女性기록, 더구나 아무리 業績을 남기고 人間으로서 아내로서 또는 그 母性으로서 예지와 思想이 현출했어도 그 보람을 後世에 전하지 못한 女性史에 있어서는 女性生活의 흔적이 장막속에 숨겨져 있으니 그 길밖에 생각할수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資料法制婚俗이나 그밖의 측면에서 찾아보는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입장으로 기록된 것이며, 더구나 男性本意에서 기록한 일방적인 資料에 불과 함으로 女性自身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알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과연 韓國古代女人史忍苦와 비련과 궁핍과 고독으로 엮어진 애한의 歷史라 하겠다.

그 밑바닥으로 흐르는것은 항상 忍從을 위한 침묵과 기다림속에서당하는 번뇌와 貧寒에서 오는 생활고였다.

강한자 앞에는 가장 卑弱하고 한자에게는 가장 잔인했던 지배층의 男性,더구나 無能力하면서도 이기적인 古代男性, 그들에게 부대예속 당하는것을 宿命으로 알았던 古代女人들은 그져 自身만을 저주할수밖에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2. 三從之道(삼종지도)

 

古代우리나라 女性生活史를 알아보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女性에 대한 생각과 社會的地位를 재조명해야만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女子에게만 强要하였던 三從之道에 대하여 알아본다.

三從之道(삼종지도)小學明倫篇(소학명륜편)에 나오는말로 女子一生에 대한것을 기록한것으로 그 原文을 소개하면

在家從父하고 適人從夫하고 夫死從子니라

고 하였다.

해설

女子出生하여 시집을 가지전에 家庭에 있을때는 아버 지의 命令을 따르고, 成長하여 結婚을 하게되면 남편의 을 따르며, 年老하여 남편이 먼져 죽게되면 맏아들의 에 따른다.

라는 뜻이다.

다시 이역하면은 아득한 옛날 母系中心社會에서는 이와같은 三從之法이 없었을것이다.

社會文明發展됨에 따라 父系中心主義社會로 변모함에 있어 生成된 법도라고 생각되지만 이것의 根本精神家庭秩序를 바로잡고 社會倫理確立하자는데 그 의의를 찾아볼수가 있는것이며 결코 이것으로 女性根本的行動을 제약하고 구속하여 女權을 박탈하자는데 그뜻이 있지 않다고 여겨진다.

其實 女子에게만 三從之道가 적용되는것 처럼 생각되나 男子에게도 이것 이상의 倫理觀 確立自己修養省察要求되는것임을 알아야한다.

오로지 이의 잘못된 생각과 實行에서 빚어지는 男尊女卑 思想이 많은 해독을 끼친것은 自他가 다 공인하는 바이다.

其實 위에서 말한 女子男子에게나 이와같은 倫理道德이 없다면 社會가 어떻게 되여 갈까 생각할때 家庭을 지키고 社會를 지켜나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漢文字句만으로 생각할것이 아니라, 남녀가 모두다 成長과정에 있을때 大小事重要한 일을 당하여, 나를 낳아주시고 가장 애끼고 所重하게 여기는 父母에게 모든것을 상의하고 또 지원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方法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다음 女子의 경우 시집을 간다는 것은 第二生命이 탄생한는것과도 같은 大變化의 장이기도 하다.

自己의 주변이나 풍습,예의 심지어는 언어도 약간 다른 낯설고 물선곳에 시집을 가는지라 모든 일에 主婦로써 또 어머니로써 不足함이 없이 生活하는데 있어서 상의하여야 할 사람이 自己平生 동반자로 生活하게될 男便뿐이니 남편에게 모든것을 의논하는것이 가장좋은 方法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와 反對男子立場에 있어서도 平生을 살아갈 안해와 의논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여겨진다.

그다음 本人男便보다 더 오래살게 되었을때는 自己의 모든것을 뒷바라지 해줄 長子에게 상의하고 또 따른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三從之道理解하고 실행하여야지 女權을 짓밟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여서는 그 根本 趣旨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겠다.

 

3. 古代社會에서의 女流 文人

 

이상과 같이 女子에 대한 行動自由가 없었음에도 不均하고 어떻게 하여 훌륭한 女流詩文있으며 또 그분들은 어떤 方法으로 工夫를 하였는지 알아본다.

古代로부터 女子에게는 學文을 배워주지 않는것이 통예요 특히 眞書라고하는 漢文은 가르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만 女子男便을 섬기는 法度와 의리를 지키면 그만이라고 생가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女子學問을 알아서는 안된다는것이다.

따라서 男子는 글을 가르쳐도 女子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但敎男而不敎女 라는 律法이 생긴것이다.

그러나 學問을 배우고 小說을 읽는 것도 朝鮮朝의 일이고 高麗時代以前女性國文조차 배울수가 없었고 學問공부는 男性들의 料擧를 보기 위한 전유물이있으니 도시 女性들의 文學이란 가사를 옮거나 口碑小說口誦 전수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工夫하였을까?

물론 아버지로 부터 基礎工夫을 한 良家子女가 없는것은 아니나 大部分男性들이 工夫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운글로써 훌륭한 女流詩文이 있으니, 麗朝 때의 여성의 漢詩文 편명만을 소개하면

1. 學者女戀慕詩(연모시)

2. 彭原妓(팽원기)動人紅自敍詩(자서시)

3. 龍成妓于咄(우돌)寄國瞻(기국첨)등을 말할수있다.

위의 作者를 살펴보면은 姓名이 불확실하며 또 그들의 身分賤人類이다.

彭原의 기생, 龍成妓女라는 뜻이다.

이와같은 歷史의 흐름속에서도 朝鮮朝 女性들은 기를쓰고 工夫를 했고 才能이 있는 女性들은 어릴때 부터 訓學하는 父兄의 뒤에 숨어서 男兄弟叔姪에게 글을 가르치고있는 부형 어깨 넘어로 보고 듣고하여 배웠고 그러는 과정에서 漢文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니 漢文 工夫男子보다 더 훌륭한 實力으로 발전하여 創作을 하기에 이른것이다.

이리하여 古代女流들의 漢詩文作品이 그 얼마리오마는 창작은 했으되 내어놓지 못하고 내어놓았다 할지라도 出刊하여 유전함이 드물었으니 겨우 남아서 전하는것이 극히 드물어 겨우 150餘作家敎千首의 시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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