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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杜甫詩集(두보시집) 盛唐詩(성당시)의 隆興(융흥)과 杜甫(두보)

청남

 

杜甫詩集(두보시집)

 

盛唐詩(성당시)隆興(융흥)杜甫(두보)

 

 

杜甫(두보)의 자는 子美(자미)이며, ()玄宗(현종)卽位(즉위)先天(선천) 원년(712)洛陽(낙양) 가까운 河南省(하남성) 鞏縣(공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다음해 연호는 開元(개원)으로 바뀐다. 開元(개원) 29년간이 唐朝(당조)의 전성기였다. 국내에는 풍작이 계속되고, 치안은 잘 유지되고, 여행자는 도적을 만나지 않았고, 천하의 인구는 4,800만을 넘었다.

국외에는 唐朝(당조)의 국위가 위엄을 떨쳐, 서쪽으로는 멀리 중앙 아세아의 여러 나라까지, 남쪽으로는 安南(안남), 동쪽으로는 朝鮮(조선)까지 미쳤다.

首都(수도) 長安(장안)은 당시 국제도시였으며, 많은 외국 사절과 상인, 여러 나라에 온 유학생 등 이국인이 거기 모여들었다. 서역의 음악과 무용, 雜技(잡기) 등이 공연되었고, 술집에는 벽안의 胡女(호녀)가 술을 따랐다. 진실로 모란이 활짝 핀 것과 같은 번영이었다.

唐朝(당조)의 초, 太宗(태종), 高宗(고종), 則天武后(측천무후) 시대부터, 中宗(중종) 시대에 이르는 사이, 宮廷詩人(궁정시인) 등이 배출되어 天子(천자)行幸(행행)公主(공주) 저택의 연회에는 반드시 그들이 참석해서 勅命(칙명)으로 ()()했다.

()는 그간 六朝(육조) 이래 音律(음률)의 변화를 거쳐, 平仄(평측), 押韻(압운), 對偶法(대우법) 등에 일정한 규칙이 생겼으며, 五言律詩(오언율시)七言律詩(칠언율시)와 같은 정연한 詩形(시형)이 완성되었다. 그 형틀에 의해 아름다운 文辭(문사)를 서술하며, 故事出典(고사출전)을 풍요롭게 사용해서 應接(응접) 贈答(증답)의 시를 만드는 것이 그들 궁정시인들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못 말장난과 문자의 技巧(기교)에 흐르기 쉬우T, 진실로 깊은 詩精神(시정신)이 나타나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러나 玄宗(현종) 開元年間(개원연간)이 되자, 시는 宮廷(궁정) 안에만 한정되지 않고 널리 세간에 퍼져 무수한 시인이 배출되면서, 百花(백화)가 일제히 핀 것 같은 시의 전성시대를 출현하였다. 이는 開元(개원) 이후 科擧(과거)律詩(율시)出題(출제) 된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조정에서는 詩賦(시부)가 성행하였으므로 시를 짓는다는 것이 관리들의 일반 교양이 되었으므로, 관리의 자격 요건으로 빼래야 뺄 수 없는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는 점점 발전했고, 진실로 詩才(시재)가 있는 사람들이 관리들 사이에서만이 아니고 僧侶(승려), 民間(민간), 女性(여성)들 사이에서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開元年間(개원연간)唐朝(당조)의 번영이 극에 달해서 인심은 매우 자유롭게 개방되었다. 시인들은 각자 자유롭게 그들의 노래를 읊었다. 궁중의 시는 전형적인 규칙을 지키며 律詩(율시)가 판을 쳤으나, 이미 자유로운 詩心(시심)에 눈뜬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形式(형식)보다가는 오히려 平仄(평측)句數(구수)押韻(압운) 등이 비교적 자유로운 古詩(고시)의 형을 좋아했고, 항간에서 歌唱(가창)되는 小曲(소곡)을 따라 五言四句(오언사구), 七言四句(칠언사구)로서 더욱 奔放(분방)한 명시와, 더욱 가련한 敍情詩(서정시)를 지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杜甫(두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杜甫(두보)律詩(율시)로서 자기 눈에 비치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에 한 글자도 바꿔 놓을 수 없는 적절한 표현을 했다. 그와 동시에 사회의 모순, 인민의 고뇌 등을 자신의 괴로운 삶의 체험을 통해 잘 살피고, 이를 자유분방한 古詩(고시), 특히 漢代(한대) 이래 민간에서 잘 불렀던 樂府形(악부형)으로 엮어 갔다. 그리하여 자신에게도 사회에 대해서도 늘 성실하였던 杜甫(두보)의 시는 近體(근체) 古體(고체)를 막론하고 그 극치에 달했다. 그러나 杜甫(두보)가 진실로 뛰어난 시인으로서 활동하게 된 것은 開元(개원) 29년의 唐朝(당조) 전성기를 지나고, 天寶(천보) 연간에 들어서, 표면상으로는 唐朝(당조)의 번영이 계속되는 듯하지만, 그 그늘에 崩壞(붕괴)의 조짐이 보이던 그 때부터였다.

 

杜甫(두보)家系(가계)少年(소년)時代(시대)

 

杜甫(두보)의 집안은 대대로 地方官(지방관)이었다. 그이 13대조는 ()名將(명장)이었으며, 또한 春秋左傳(춘추좌전)에 주석을 단 유명한 杜預(두예)도 그의 선조였다. 杜預(두예)京兆(경조) 杜陵(두능) 사람이다. 그 증손 杜遜(두손) 대에 이르러 襄陽(양양)으로 이사를 하였고, 그 뒤 依藝(의예) 대에 이르러 鞏縣(공현)의 현령이 되었으므로 집을 河南(하남) 鞏縣(공현)으로 이사했다. 依藝(의예)의 아들 審言(심언)膳部員外郞(선부원외랑)이 되었는데 律詩(율시) 작가로서도 유명한 初唐(초당)의 시인이었다.

審言(심언)의 아들 ()奉天(봉천) 현령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杜甫(두보)이다.

이와 같이 杜甫(두보)의 선조는 儒敎(유교)를 신봉하는 관료였다. 그리고 그의 조부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두보의 일생을 통해, 정치에 대한 관심과 강한 책임감과 같은 것을 갖는 것과 동시에, 또한 시는 우리 가문의 전통이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절대로 시와 무관한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杜甫(두보)叔父(숙부) ()은 그의 부친인 審言(심언)이 원수인 司馬季重(사마계중) 때문에 무고하게 죄를 받고 투옥되어, 꼬투리를 잡아 죽이려하자 이를 격분한 나머지 13의 소년 이였으나 원수인 司馬(사마)를 찔러 죽이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잡혀 죽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세간을 감동시킨 사건이었는데 杜甫(두보)의 피 속에는 이러한 강직한 정신도 흐르고 있었다.

杜甫(두보)의 모친은 淸河(청하) 崔氏(최씨)인데 杜甫(두보)가 어릴 때 죽었지만, 그 일족은 매우 세력이 있던 일족이었다. 이상 모든 사실들이 杜甫(두보)의 성격과 정신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사람은 누구나 그의 家系(가계)遺傳(유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天寶年間(천보연간) 이후, 사회의 변동과 거기서 그가 처한 자신의 파란 많은 생활이었다.

 

杜甫(두보)의 소년시절에 대한 알려진 바는 매우 적다.

그 당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위 開元(개원)의 전성기였으므로, 소년기는 비교적 평탄했을 것으로 본다. 7세 때 시를 지었다는 조숙한 소년이었고, 힘차기가 송아지 같다라는 말도 있고,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 하루에 천 번이나 올라간다라는 말도 전해진다. 어머니를 잃고 한때 洛陽(낙양)에 있는 숙모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그가 생장하면서 洛陽(낙양)의 명사들 사이에도 그의 재주를 인정하고, 그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李範(이범)崔滌(최척)과 같은 명사 저택에도 출입하게 되었다. 15세에서 20세 경에 이미 술을 마시며, 年長者(연장자)와 사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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