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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古典(고전)의 吟味(음미) 栗谷先生(율곡선생)의 학문과 사상 (2)

청남

 

 

古典(고전)吟味(음미)

 

栗谷先生(율곡선생)의 학문과 사상 (2)

 

 

 

앞장에 이어 계속 栗谷先生(율곡선생)思想先生이 남기신 좋은 말씀과 행적을 살펴본다.

 

1. 金剛山(금강산) 入山(입산)

 

先生께서는 孝誠이 지극하여 事死如事生(사사여사생)”곧 죽은 사람섬기기를 살아있는 사람 섬기듯한다.”이 같은 精誠으로 3년의 상기를 마치고 人生無常(인생무상)을 느껴서 금강산에 入山 하였다고하는데 하루는 발길 닿는데로 깊은 골짜기를 몇리쯤이나 걸어 들어가다가 조그만한 암자가 있는길을 보고는 찾아 들어갔다.

아주 작은 암자인데 스님한분이 가사를 입고서 단정히 앉아있는데 栗谷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을뿐 아니라 한마디 말도 없었다.

이에 율곡이 암자 안을 둘러보니 物件 하나 눈에 띄지 아니하고 부엌에도 여러날 불을 때지 않았음이 분명하니 율곡이 스님을 향해 물었다.

여기서 뭘하시오?그러나 스님은 웃음만 지을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시 율곡선생께서 물었다.

뭘먹고 허기를 때우시오?스님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개 내 양식이오또 율곡께서 스님에게 묻기를

孔子와 석가 중 누가 聖人이시오?라고하자 스님이 말하기를

선비는 老僧을 속이지 마시오라고하고 또

佛敎는 오랑캐의 宗敎文明國에는 希敎할것이 못되지요

임금은 동쪽 오랑캐 사람이고 文王은 서쪽 오랑캐사람인데 그들도 오랑캐라고 말해 보시요?”

佛敎에서 말하는 眞理儒敎에서 말하는 眞理보다 더 特別한 것이 없는데 어찌 儒敎를 버리고 佛敎에 몸을 담았는지요?그리고 또 스님은 栗谷에게 말하기를

佛敎에서도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 있는지요?율곡은 말하기를

孟子가 사람은 착한 性品으로 태여난다는것을 證明할때는 恒常 堯舜을 예로 들었으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과 다르지 않지요 다만 儒敎에서는 실제의 것을 탐구하여 체득하지요스님은 율곡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도아니고 도 아니라는 것은 무슨뜻이지요?

그것 역시 눈앞에 展開되는 現像界 그대로지요.스님은 웃고만 있었다.

율곡이 다시 말하였다.

소리개가 날아 하늘로 올라가고 물고기가 못속에서 뛰노는것은 인가요? 인가요?

도 아니고 도 아니것이 眞理本體인데 어찌 그러한 말과 比較할수 있겠소. 이미 말로 도아니고 도 아니라고 表現해 버렸다면 그것 곧 現像界요 어찌 本體하고 할수 있겠소

그렇다면 儒敎의진리는 말로써 전할수 없지만 佛敎眞理는 오히려 文字의 경지를 넘어서는 깊은것이 못되지요이말에 스님은 깜짝 놀라면서 율곡의 손을 붙들고 말했다.

그런데 속된 선비가 아니요 나를 위해 를 지어 아까말한 소리개와 물고기에 관한 글귀를 풀이해 주시오.이에 율곡이 한 수를 지었다.

를 소개하면

 

魚躍鳶飛上下同(어약연비상하동)하니

這般非色亦非空(저반비색역비공)이라

等閒一笑看身世(등한일소간신세)하니

獨立斜陽萬木中(독립사양만목중)이로다.

 

해설

물고기가 뛰놀고 소리개가 날으는것은 위와 아래가 같은 현상 곧 感應理致이며 그것은 도 아니고 도 아닌 지라 할일 없이 한가히 한번웃고 이몸을 돌아보니 홀로서 해가 기울어지는 숲속에 서있도다.

율곡의 이 를 스님은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종이를 접어 소매속에 넣고는 다시 돌아앉아 벽을 향하는 것이었다.

栗谷이 사흘뒤에 다시 찾았더니 암자는 그대로 있었지만 스님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없었다고 한다.

 

2. 율곡선생의 自警文(자경문)

 

율곡이 금강산에서 내려와 외할머니의 포근한 사랑으로 그 사이의 고달픔을 풀고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자기스스로 경계하는 글 곧 자경문을 지어서 이를 실천 하였다고 한다.

이를 간단히 말하면

첫째: 먼저 뜻을 크게 지니자. 성인을 모범으로 삼자. 士希賢(사희 )하고 賢希聖(현희성)하는 方法으로 雄志(웅지)를 가져 야한다.

둘째: 마음을 가다듬자. 마음이 가라 앉으면 말이 적게 된다. 말을 적절히 하자. 文煩則厭見(문번칙염견)하고 言多則厭聽( 다칙염청)이라는 말이있다. 마음의 안정이 되어야 무슨 일 이던지 할수있을것이다.

셋째: 혼자있을 때를 삼가자. 모든 나쁜짓은 혼자있을때 마음을 다 잡지 않아서 생겨난다. 中庸에서도 莫見乎隱(막현호은)이며 顯乎微(막현호미)니 고로 君子愼其獨也(신기독야)니라. 라고하였으니 홀로있을때 삼가하고 조심하여 自己의 마음 良心을 속이지 아니하면 그사람이 곧 君子가 된다는것 이다.

네째: 앞으로 해야할일을 미리 생각하자. 실천하지 않는다면 공부 도 소용이 없다.

다섯째: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면 성실하게 수행하자. 개인적인 이 익을 추구하는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여섯째: 잘못된 일과 맞딱뜨리게 되면 스스로 깊이 반성하고 상대 방에게 감화를 주도록한다.

일곱째: 집안에 화목하지 못한일이 생긴다면은 그것은 나의 성의 가 부족한 탓이다.

여덟째: 밤에 잠자거나 병이 아니라면 절대로 눕지 않는다. 기대지 도 않는다. 그리고 낮잠을 자지 않는다.

아홉째: 공부는 늦추지도 않고 서둘지도 않는다. 공부는 죽은 후에 야 그만두는것이니 그 효과를 서두른다면은 그것은 이익 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이상과같은 비장한 결심을 한 그는 공부에 매진해서 스물아홉살 되던해 벼슬길로 나아갔다.

첫벼슬은 지금의 재무부 과장급인 호조좌랑이었다.

그사이에 그는 나라에서 시행하는 과거에 아홉번 응시해서 그때마다 장원을 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그를 아홉번 장원한분 九度壯元公(구도장원공)이라 일컬었다.

이후그는 숱한 벼슬을 거치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몸바쳐 일하게 된다.

 

3. 先生의 업적과 사상적 특징

 

대략 요약하여 말해본다.

첫째로 율곡선생은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그는사람됨이 깨끗하고 마음이 넓었으며 솔직 담백했다.

가정에서는 항상 가족들에게 사랑으로 대했고 일가친척 누구에게나 따스한 정을 베풀었다.

일가친척중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것이 안타까워 그는 서울에 있는집을 팔아 고향 파주에 집한채를 작만하고서 모든 일가친척을 다모아서 함께 살았다.

한때는 식구가 백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가까운 친척에 대한 이러한 사랑을 모든 이웃에게 미루워서 백성 위하는 정치를 베풀기 위해 그는 정성을 다했다.

 

둘째로 율곡은 개혁주의자였다. 時宜適切(시의적절)하게 그 시대에 알맞게 개혁정치를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같은 주장은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구하는 오직 하나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는 동양유교 경전의 최고학설인 주역에 바탕을 두고서 논리를 펴나갔다.

易理變化原理로 이 세상모든것은 잠시도 쉬임이 없이 변해간다고 단정했다.

변화에 순응하는것은 順理이고 變化를 거부하는것은 逆理이다.

율곡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치기구의 개혁을 건의했다.

經濟司(경제사)라는 최고기구를 설치해서 혁신 정치를 시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기를 쓰고 반대했다.

집위에 집을 짓는 격 곧 層上層 이라는 것이다.

율곡은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임시대안으로 십만의 군사를 기르자는 십만양병론에 국방정책을 제시했다.

이미 율곡선생께서는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국가의 정세를 파악하고 닥쳐올 미래를 통찰해보는 혜안과 예지력이 있었던 것이라 할수있다.

과연 선생이 돌아가신지 팔년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우리의 강토는 초토화되었고 많은 백성들이 왜군의 말발굽아래 유린 당하고 민족적인 비극이 일어났던것이다.

셋째로 율곡은 청렴하고 능력이 뛰어난 행정가였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항상 공부하는 자세였으며 실질적인 효과를 얻는 행정을 강조했다.

先生께서는 政貴知時(정귀지시)하고 事要務實(사요무실)”이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정치는 때를 아는것이 중요하고, 일은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 율곡선생은 남을 위해 몸바쳐 일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했기 때문에 청렴결백하였다.

그는 높은 벼슬자리에 많이 있었지만은 사후에 유산은 커녕 당장 장례를 치를 경비가 없어 친구와 제자들이 돈을 모아야 했다고 한다.

후에 학자들은 율곡을 실학의 실마리를 열어준 인물이라고 하였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각방면에 있어 空理空論(공리공론)을 배격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추구했고 현실생활과 직결되는 정책수립을 제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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