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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古典(고전)의 吟味(음미)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선생의 생애와 학문

청남

 

 

古典(고전)吟味(음미)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선생의 생애와 학문

 

 

조선조 .正祖때 대학자로 세상에 명성을 떨쳤던 실학자 茶山 丁若鏞 선생에 대한 전기와, 선생의 많은 저서 속에서 선생이 남긴 명언들을 음미해 본다.

 

1. 선생의 일대기

 

茶山 先生의 자료는 한국사상대전집과 기타 관계문헌을 통해서 입수하였다.

선생의 美鏞(미용) , 호는 茶山(다산), 三眉(삼미), 與猶堂(여유당), 천주교 세례명은 요한 휘는 若字(약자) 鏞字(용자)이다.

1762년 영조 38616일 경기도 廣州(광주)에서 진주목사 丁載遠(정재원)의 네째 아들로 출생하여 小名(소명)歸農(귀농)으로 불렀다고 한다.

寬厚精緻(관후정치)한 성품인 茶山4세 때 총명해서 글을 배웠고 부친의 임지로 따라 다니며 훈도를 받은 귀동이었다.

7세 때에 벌써 시를 짓는 재동으로 이름이 높았고 10세 때부터는 부친 진주공에게 經學(경학)을 수강했다고 한다.

1776년 영조52년 선생께서는 14세의 나이로 서울로 상경하였다.

이 상경은 선생에게 인생으로서만 아니라 학문에 있어서도 크나 큰 전환의 계기 마련이 되였던것이다.

선생 15세에 豊山(풍산) 洪氏(홍씨)와 결혼하였고, 星湖(성호) 李瀷(이익)의 유고를 보고 경제치용의 학에 뜻을 두었고 한편 權哲身(권철신), 丁若銓(정약전), 李蘗(이벽)과 함께 산사에서 천주교리 연구회를 열고 신앙생활을 했으며 23세에 초시에 入格(입격)하고, 會試(회시)에 생원으로 입격된뒤 중용강의를 올리고 연이어서 庭試 別試(정시별시)를 거쳐 28세에 殿試(전시)入格(입격) 될때까지 茶山은 자유분망하게 학의 성립과 등과에 바빴다.

式年文科(식년문과)甲科(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고 예문관 檢閱(검열)이 되었으나 西學(서학) 곧 천주교인 이라하여 탄핵을 받아 어명으로 충청도 海美(해미)로 유배되었으나 10일만에 풀려나 持乎修撰(지평수찬)이 되었다.

탁월한 재학과 利用厚生(이용후생)의 경륜으로 正祖(정조)의 총혜를 받아 드이어 33세 때는 경기도 암행어사로 제수되었다.

 

2. 경기도 암행어사로서의 업적

 

대개 암행어사라면 주권을 대행하는 막강한 왕권를 휘둘리는 것이 일반적인것으로 되여있으나 선생께서는 경기도 농촌을 샅샅이 돌아보고 그 황폐상을 애련과 분노의 눈으로 관찰하였다.

그때에 경기도 농촌 모습을 시로써 기록하였으니 원문의 해설서를 소개하면은

집안에 가진거란 심히 쓸쓸해

모두 거둬 팔아야 ,냥 될까....

산조 이삭 대롱대롱 석줄 매달고

붉은고추 한 꿰미 걸어두었네

헝겊붙여 깨진독 구멍 막았고

새끼 메어 시렁을 매달았으라

놋수저는 예전에 이장이 가져갔고

쇠솥은 지금또 옆집 양반 뺏어가네

이런 비참한 현실을 처음본 그는 놀랍고 분한 마음 금치못했으니 그 시 끝머리에서

嗚呼此屋滿天地라도 九重如海那盡察하랴. 하였다.

해석

아아? 이런집이 온 천지에 꽉 찾어도 구중궁궐 멀고 멀어 알기나 하였으랴...

 

이렇게 부르짖으며 발본색원책을 강구햐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탐관오리의 징계표본으로 連川(연천)현감을 파직시키기도 했다.

暗行御使(암행어사) 1년동안에 그는 실로 많은 문제와 농촌현실을 보았으니 이것이 茶山 사상의 근저가된 것이다.

34세에 同副承旨(동부승지), 兵曹參議(병조참의)를 제수하였으나 周文謨(주문모) 신부 사건에 연루 되었다고 하여 金井(금정) 察訪(찰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뒤에 副司直(부사직) 谷山府使(곡산부사), 兵曹參知(병조참지), 刑曹參議(형조참의)를 지내며 柳得恭(유득공), 朴齊家(박제가)등과 함께 규장각의 편찬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茶山은 관계에 뜻을 둔것은 아니지만 다만 국민과 국가에 유익한 일이라면 임금님의 은총과 명을 받들어 언제든지 또 어디든지 가서 봉사했으나 탐관지배들이 불란을 이르키는 속에서는 초연히 벼슬을 던지고도 백성을 위해 할일을 다 했다.

이제까지의 치적이나 저작이 관직 생활에서만 할수 있었던 일이 아니요 오히려 치정의 틈틈에 한 일이었고 그 뒤의 방대한 경제치용의 저작과 창작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반대세력들은 茶山이 벼슬을 버렸다고 해서 가만두지 않았다.

茶山38세되던 1799년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채번암 선생이 돌아가시고 茶山에게 총애을 내리시던 正祖임금이 승하하게 되니 노론에서는 날로 심하게 천주교도들을 탄압 고발하는 통에 1801茶山은 형과 함께 잡히어 장기로 유배되고 형은 신지도로 귀양 가게 되었다.

그해 10월에 黃嗣永(황사영) 帛書(백서)사건이 일어나 다시 茶山은 강진으로 若銓(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어 이후 18연간을 이 촌락에서 蟄居生活(칩거생활)을 했다.

이때 부터 茶山은 골수에 스며드는 荊棘(형극)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러나 茶山은 다른 유배인들처럼 애상에 잠기거나 임금님의 부름을 고대하거나하는 녹록지인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호탕 초속하고 그러면서도 백성들 속에 깊숙이 들어가 백성들과 함께 호흡하고 머리에 심한 두창을 치료해 주고 종두술을 지어 백성을 가르치고 농민생활을 속깊이 관찰했고 그 대책을 강구했다.

이때의 경론이 바로 一表二書(일표이서), 經世遺表(경세유표)牧民心書(목민심서)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들을 집필했다.

이때 농촌을 샅샅이 관찰한것을 장기농가 타맥행 등 수백수 의 시로 표현되었다고한다.

183622275세를 일기로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파란많던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1883연 고종의 명으로 茶山全書(다산전서)轉寫(전사)하여 內閣(내각)에 수장하고 19107월에 규장각 提學(제학)으로 추증되었으며 謚號(시호)文度公(문도공)으로하라는 어명이 내려졌다.

 

3. 왕이 諡號(시호) 文度(문도)를 내린 내력

 

원래 謚號(시호)는 상소에 의거 어전회의에서 결정하되 그사람이 사후에 덕망과 학문, 인품, 사회에 끼친바에 따라 적합하게 내리는 것으로 博學多聞曰文이요 制事合義曰度라고 하였는데 이말은 문장, 경제가 탁월하여 一世(일세) 의사표이기 때문이었다.

潮岩(조암) 文一平(문일평)선생은 茶山해박 정심의 학문과 백과를 포괄한 대가라고 극찬했으며 위(위당) 鄭寅普(정인보)선생은 석학굉식의 학자라고 했는데 이런 칭호들은 하나도 과찬이 아니고 사실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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