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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古典(고전)의 吟味(음미) 孟子(맹자)

청남

 

 

古典(고전)吟味(음미)

 

孟子(맹자)

 

1.맹자 편찬배경과 四書가 되기 까지의 과정

 

孟子(맹자)는 맹자가 지은 책으로서 四書(사서)중에 하나이다.

司馬遷(사마천)史記(사기)에 따르면 의 저술이 분명하지만,자신의 著作(저작)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드물므로,맹자의 자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나라의 韓愈(한유)도 맹자가 죽은 뒤 그의 문하생들이 그 동안의 일을 기록한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어쨌던 首尾一貫(수미일관)한 논조와 설득력 있는 논리의 전개,박력 있는 문장은 孟子라는 한 聖人(성인)의 경륜과 인품을 전해주기에 손색이 없다.

맹자는 中國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이름을 ()라고 하였으며, 공자님을 숭배하고 私淑(사숙)하였으며,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제자이다.

공자가 탄생한 ()나라 출신이며 孟孫氏(맹손씨)의 후손이다. 孟子王道政治(왕도정치)의 이상을 실천에 옮겨서 어지러운 시대를 건져보려는 간절한 뜻에서 (),()나라 등 列國(열국)을 순방하면서 遊說行脚(유세행각)을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 간 孟子는 제자 公孫丑(공손추) 萬章(만장)과 함께 孟子七編(맹자칠편)을 저술하였다는 기록이 司馬遷(사마천)史記(사기)에 나타나 있다.

孟子四書로 인정되기는 나라 초기였으나, 후기에 이르러 韓愈(한유),柳宗元(유종원)등 거유들에 의해서 그 중요성이 다시 거론되었고, 宋代(송대)에 들어가 경전으로 선정되면서 국자감에서 맹자를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神宗(신종) 때는 맹자를 孔子廟(공자묘)配享(배향)시키고 科擧試驗(과거시험)에도 이 孟子科試하게 되었으며, 南宋(남송) 朱子(주자)에 이르러 맹자를 포함한 四書의 윤곽이 분명히 정해져서, 오늘날과 같은 지위가 확고히 굳히게 되었다.

 

2. 孟子(맹자)構成(구성)

 

맹자는 전 7,26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4,685자로 논어의 약 두배나 되는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

7편의 편명은 논어와 같이 冊篇(책편)의 첫머리에 나오는 人名(인명)을 따서 篇名(편명)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며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것이 아니다.

離婁(이루),盡心(진심)두편은 짧지만 교훈적인 말씀을 모은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 가운데 한편의 예를 들어본다.

孟子 見梁惠王하신대 王曰叟不遠千里而來하시니...........라는 말이 있다.

孟子께서 양혜왕을 만나 보시니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노인께서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오셨으니........라는 代文(대문)에서 첫머리의 나오는梁惠王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篇名(편명)으로 삼은 것이다.

 

3.孟子內容

 

孟子中心思想(중심사상)仁義(인의)라고 할 수 있다.

공자님께서 부르짖은 이 사람이 가져야 할 착한 마음이라고 한다면,()는 이 착한 마음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한 것이라고 하겠다.

맹자는 道學的(도학적)인 면에서 性善說(성선설)을 주장하여 人間(인간)本姓(본성)은 원래 착한 것이라는 것을 밝혔으니 이는 孟子獨創的(독창적)인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醇化(순화)시키는데 매우 공이 컸으며 한 학설로서 완벽하게 定立(정립)하여 많은 학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는 저 유명한 四端論(사단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王道政治(왕도정치)를 주장하였다.

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일념에서 列國(열국)을 순방하며 제창한 것이 바로 이 왕도정치 이념이었다.

왕도정치란 仁義(인의)을 바탕으로 하고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民本主義(민본주의)위에 이상적인 사회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왕도정치는 · · 文武王 三王(삼왕)이 정치하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井田制度(정전제도)를 실시해서 恒産(항산)을 함으로 백성들 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는데, 경작 9,稅納(세납) 1稅法(세법)을 마련 백성들의 부담을 가볍게 하였다.

둘째, 형법을 가볍게 하였다.

셋째, 도덕교육을 강화하여 윤리질서를 확립시켜 밝은 사회건설을 하였다.

 

4. 孟子를 성인으로 기른 孟母(맹모)賢明敎育觀(교육관)

 

우리는 흔히 三遷之敎(삼천지교)斷機之訓(단기지훈)이니 하는 말들을 쓰는데 이 말의 어원은 실로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친 방법에서 유래되었다.

맹자의 집은 처음에 공동묘지가 근처에 있었는데, 어린 맹자가 항상 보는것이라고는 무덤을 파고 상여를 메며 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이였다.

그래서 그도 늘 그런 흉내를 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이를 본 맹자의 어머니는 그 곳이 자식을 기를 곳이 못된다고 판단하고 시장가로 이사를 갔다.

시장 가서 이사를 간 다음부터 맹자는 장사하는 사람의 흉내를 내며 놀았다.

역시 그곳도 자식 키울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어머니는 서당이 있는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글공부하고 예절을 익히는 흉내를 냈으므로, 그곳에 정착해 살면서 孟子를 교육시켜 마침내 큰 학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맹자 어머님이 자녀교육을 위하여 세번 집을 옮겨서 교육을 시켰다고 해서 孟母三遷(맹모삼천)이라는 말이 생겼다.

맹자가 조금 자라서 맹자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일정 기간 먼 곳에 있는 스승 곁에 유학을 보냈다.

그러나 집이 그리워 중도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었는데,예고없이 돌아온 아들을 보고 칼을 들어 베틀의 베를 끊어서 맹자를 경계하였다.

깊이 잘못을 깨달은 맹자는 다시 공부하던 곳으로 되돌아가서 기한을 마칠 때까지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다.

이를 斷機之訓(단기지훈)이라 하며, 맹자의 어머니는 賢母(현모)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이와 같이 훌륭한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孟子孔子 다음가는 聖人이 되었던 것이다.

 

5. 結論(결론)

 

맹자는 性善說(성선설)을 제창하였으며 自己省察(자기성찰)을 통한 높은 修養(수양)으로서 人間感情(인간감정) 밑바탕에 깔린 私慾(사욕)을 억제하고, 착한 天賦(천부)本性(본성)保存(보존)할 것을 강조하였다.

浩然之氣(호연지기)를 논하며, 正義(정의)가 인간의 생명 보다도 더 소중함을 말하였고, 天命論(천명론)을 부연 自己分守(자기분수)安住(안주)하고 天命(천명)順應(순응)하여야 함을 말하였다. 또한 民意(민의)를 존중하고 백성을 사랑하며,백성을 위한 王道政治(왕도정치)를 펴서 功利主義(공리주의)에 급급하여 가렴구주를 일삼는 統治者들의 覺醒(각성)을 촉구하였다.

실로 맹자의 달변은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고, 논리는 正鵠(정곡)을 잃지않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민감한 표현, 적절한 비유 등 맹자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감명을 받고 흥미진진하며, 읽고 생각할 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된다.

孟子(맹자)를 읽으면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의 學說(학설)은 사람의 日常生活(일상생활)微細(미세)한 것부터 人格陶冶(인격도야) 立身處世(입신처세)내지는 세상을 經綸(경륜)하기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누구나 다 한번씩 읽어야할만한 귀중한 서적이며 또한 친지에게 권할만한 값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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