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路難(행로난) 三首(삼수) 其三(기삼) 李白(이백)
有耳莫洗潁川水(유이막세영천수) 有口莫食首陽蕨(유구막식수양궐)
含光混世貴無名(함광혼세귀무명) 何用孤高比雲月(하용고고비운월)
吾觀自古賢達人(오관자고현달인) 功成不退皆殞身(공성부퇴개운신)
子胥旣棄吳江上(자서기기오강상) 屈原終投湘水濱(굴원종투상수빈)
陸機雄才豈自保(육기웅재개자보) 李斯稅駕苦不早(이사세가고부조)
華亭鶴唳詎可聞(화정학려거가문) 上蔡蒼鷹何足道(상채창응하족도)
君不見吳中張翰稱達生(군부견오중장한칭달생)
秋風忽憶江東行(추풍홀억강동항) 且樂生前一杯酒(차낙생전일배주)
何須身後千載名(하수신후천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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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귀가 있어도 許由(허유)와 같이 潁川(영천) 물에 씻지 말고
입이 있어도 백이‧숙재와 같이 수양산의 고사리는 먹지 말라
자기의 재능을 안으로 품고 세상에 나가 이름 없는 것도 귀하니
홀로 높이 구름사이에 뜬 달에 비할 필요는 없다네.
내가 보건대 고래의 이름 있고 지위 높던 사람
성공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모두 신명을 잃었더라
吳子胥(오자서)는 자살 명 받고 시신 吳江(오강)에 버려지고
屈原(굴원)은 결국 스스로 湘江(상강)에 투신자살하고 말았네
陸機(육기) 같은 영웅도 어찌 자기의 안전 보전할 수 있으리
李斯(이사)는 빨리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던 것이 불행의 근원
그래서 陸機(육기)는 華亭(화정)의 학우는 소리 어찌 들을 수 있으며
李斯(이사)는 上蔡(상채)에서 매 사냥 어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대 보지 않는가 吳(오)의 張翰(장한)은 무사히 살아 남았다는 것
가을 바람 불자 江東(강동)을 생각하고 즉시 돌아갔네
자아 生前(생전)에 한 잔 술이라도 즐겨 마시세
그까짓 죽은 뒤 천년에 이름 남길 필요 없네
【註】
潁川水(영천수)... 許由(허유)가 穎川(영천) 남쪽에서 밭을 갈고 있었는데 堯(요)가 九州(구주) 의 長(장)으로 초빙했다. 허유는 이 말을 듣기 싫어해서 영천물에 귀를 씻었 다는 고사가 있는 강.
首陽蕨(수양궐)... 수양산의 고사리. 伯夷(백이)와 叔齋(숙재)의 고사.
子胥(자서)....... 춘춘시대 吳(오)의 충신. 吳王夫差(오왕부차)가 太宰(태재) 伯嚭(백비)의 참 언을 믿고, 伍子胥(오자서)의 충간을 잘 음미하지 않고 그에게 자살을 강요했 다. 吳王(오왕) 夫差(부차)는 越王(월왕) 句踐(구천)이 싸움에 져서 항복했 을 때, 越王(월왕)을 죽이라는 伍子胥(오자서)의 의견을 듣지 않고, 越(월) 의 뇌물을 받은 太宰百嚭(태재백비)이 越王(월왕)을 살리라는 의견을 받아 드려, 도리어 오자서를 자살시켰다. 오자서의 의견은 적중해서, 吳(오)는 드 디어 越(월)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屈原(굴원)....... 楚(초)의 懷王(회왕)의 左徒(좌도)가 되었으나, 참언으로 추방당했다. 楚 辭(초사) 離騷(이소)의 賦(부)를 지었다. 懷王(회왕)의 아들인 頃襄王 (겨양왕)도 또한 참언을 믿고 호남으로 보냈다. 굴원은 九章(구장)의 시 름의 마음을 담아 九歌(구가), 天問(천문), 漁父(어부) 등 여러 작품을 남기고, 湘水(상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陸機(육기)...... 晉代(진대)의 시인이었으나 成都王(성도왕) 潁(영)이 長沙王(장사왕)을 쳤을 때, 陸機(육기)를 河北(하북) 大都督(대도독)으로 모든 군사를 통솔하게 했 는데 싸움에 크게 졌다. 성도왕은 참언을 믿고 육기를 잡아 사형에 처했다. 죽음에 임해서 탄식하며 「華亭(화정)에서 학이 우는소리 다시는 들을 수 없 구나」라 했다. 華亭(화정)은 지금의 江蘇省(강소성)松江縣(송강현)에 있으며 陸機(육기)의 고향이다.
李斯(이사)........ 秦始皇(진시황)의 丞相(승상)이었으나 2세 때, 趙高(조고)의 참언으로 그 中 子(중자)와 함께 사형을 당했다. 처형장에서 아들을 돌아보며 「너와 함게 黃 犬(황견)을 몰고 매를 팔 위에 얹고, 함께 上蔡(상채) 東門(동문)을 나가 간 사한 토끼를 잡으려 해도 이재는 할 수가 없구나」라고 했다. 上蔡(상채)는 지금의 河南省(하남성) 上蔡縣(상채현)이며 李斯(이사)의 고향이다.
稅駕(세가)..... 마차의 말을 풀고 쉬는 것.
張翰(장한)...... 吳(오) 나라 사람이며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이 江東(강동)의 阮籍(원적)이라 칭했다. 齋王(재왕) 冏(경)이 불러서 大司馬東曹掾(대사마동 조연)으로 삼았다. 張翰(장한)은 가을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吳中(오중)의 菰菜(고채)와 羹(갱)과 鱸魚膾(노어회)를 생각하며 말하기를, 인생이란 뜻대 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찌 수 천리밖에 사관해서 관직을 자랑할 필 요가 있나. 하고는 가마를 명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리고 같은 군의 고향 사람인 顧榮(고영)에게 떠날 뜻을 밝혔다. 顧榮(고영)도 그의 손을 잡 고 말하기를 “나도 그대와 함께 남산의 고사리를 뜯고 三江(삼강)의 물을 마 실 것이다” 하면서 함께 떠나가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齋王(재왕) 冏(경)이 망해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보고 기회를 잘 살폈다고 말을 했다.
江東(강동)....... 양자강의 동쪽. 즉 하류지방인 吳(오)를 뜻함.
達生(달생)....... 사는 이치에 밝은 것. 莊子(장자)에 達生理(달생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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