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 다음 문장의 해석에 대해 여쭙습니다.
조민수
안녕하십니까.
저는 직장인입니다만, 이와는 별도로 독도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사료들을 수집하면서, 일본인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 혼란스러운 점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봅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삼봉도에 대한 기록입니다.
二十五日西距島七八里許到泊望見
則於島北 有三石列立
次小島中島之西 又有小島
皆海水通流亦於海島之間
有如人形 別立者三十
1) 25일에 섬의 서쪽 7, 8리(里) 남짓한 거리에 (배를) 정박하고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2) 25일에 섬을 서쪽으로(두고) 7, 8리(里) 남짓한 거리에 (배를) 정박하고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제일 첫 줄을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에는 위의 1)과 같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독도문제를 연구하는 일본인은 2)와 같이 해석을 합니다.
1)의 의미는 관찰자가 배를 타고 섬의 서쪽 바다로 갔다는 의미가 되고,
2)의 의미는 관찰자는 배를 타고 섬의 동쪽 바다로 갔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일본인은 삼봉도는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라는 것이고,
이후에 나오는 三石列立의 三石은 울릉도 동쪽 해안에 있는 삼선암을 말한다는게 그 주장의 요지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국역본에 의하면, 이 관찰자는 섬의 동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섬의 서쪽 바다로 나간것이 됩니다.
울릉도의 서쪽 바다로 나갈 경우에는 울릉도의 높은 봉우리에 막혀서 삼선암을 관찰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본인의 주장은 틀린게 되는거지요...
죄송합니다만,
二十五日西距島七八里許到泊望見
이 한문 문장을 관찰자가 섬의 동쪽바다로 나간것으로 해석을 할 수 있는지 확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섬의 서쪽으로 간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
이 일본인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예로 들면서 반론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龍門山。東距砥平二十里, 西距楊州三十五里, 南距川寧十七里, 北距加平四十里。
용문산 : 동쪽으로 지평(砥平)에 이르기 20리,
서쪽으로 양주(楊州)에 이르기 35리,
남쪽으로 천녕(川寧)에 이르기 17리,
북쪽으로 가평(加平)에 이르기 40리이다.
이 기록에서 양주와 용문산만 떼어 놓고 보면,
龍門山。西距楊州三十五里,
실제 지도상에서 용문산은 양주의 동쪽에 있으니,
조선왕조실록의 다음 문장은 세종실록지리지의 문장과 구조가 똑같으므로,
(我)西距島七八里許
섬을 관찰하고 있는 관찰자의 위치는 섬의 동쪽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간단한 문제인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아닌것도 같고....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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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시:
- 2007-04-05 오전 3:3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