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承(광산승씨)
본관(本貫): 광산(光山)
시조(始祖): 승개(承愷)
유래(由來):
광산 승(承)씨는「여지승람」에 광주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조는 고려 정종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한 승개(承愷)로 전한다. 그러나 연일 승(承)씨에서도 승개를 시조로 받들고 있어 동원(同源)으로 추정되는데 상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어 정확하게 상고하지 못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승성구
시조 개(愷)의 아들 성구(聖구)는 고려조에서 영의정(領議政)을 지냈다
승명복(承命福)
시조의 손자 명복(命福)은 고려조에서 영의정(領議政)을 지냈다.
승교(承敎)
8세손 승교(敎:상명의 아들)는 1427년(세종 9) 진사시에 합격한 후 정언(正言)을 거쳐 봉렬대부(奉列大夫)로 남평 현감(南平縣監)을 역임.
승봉선(承奉先)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승명수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승설(承渫)
승설(渫)은 광해군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냈다.
승정조(承鼎祚)
경종(景宗) 때 증광문과에 급제한 정조(鼎祚)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첨지중 추부사(僉知中樞府使)를 지냈다.
승진복(承進福)
진복(進福)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용양위 호군(龍 衛護軍)을 역임하여 광산 승씨의 가통을 지켰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광산 승(承)씨는 남한에 총 140 가구, 648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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