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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공주김씨(金)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공주김씨)

 

본관(本貫): 공주(公州)

시조(始祖): 김의손(金義孫)

유래(由來):

 

공주 김씨(公州金氏)의 시조(始祖) 김의손(金義孫)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예 오산군(鰲山君) 김지대(金之岱 : 청도 김씨의 시조) 9세손이다. 그는 조선 세종(世宗) 때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거쳐 돈령부사(敦寧府事)에 오른 점()의 아들 3형제중 둘째로, 어려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참판(參判)을 거쳐 공주백(公州伯)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그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공주(公州)로 삼아 청도 김씨(淸道金氏)에서 분적(分籍)하였는데, 시조(始祖의손(義孫)의 아들중 여의(麗義일동(逸東응동(應東)은 청도 김씨를 계승하였고()은 공주파(公州派), () 평양파(平壤派), 타는 곽산파(郭山派)로 각각 세계(世系)를 이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학기(金學起)

1414(태종 14) 1488(성종 19).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문백(文伯). 아버지는 직장 만의(萬義)이고,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1460(세조 6) 평양에 순행한 세조가 평안도와 황해도 유생에게 보인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 · 장령 · 집의 · 사옹원정 ·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469(성종 즉위년) 평안도에 흉년이 들자 점마별감(點馬別監)이었던 그를 보내 농삿일을 살피도록 하려 하자 신숙주(申叔舟)가 아직 조정관리로서 정사에 정통하지 못함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보내게 하였다.

1478년에 교리로서 동문선 편찬에 참여하고, 1482년에 소문충공집 蘇文忠公集 가운데 어려운 부분을 주해하는 데 참여하였다.

, 서예를 잘하여 세조의 화살통에 바닷가 정자에 달이 먼저 비추이고, 남쪽에 있는 꽃가지에 봄이 먼저 이른다(近水樓臺先得月 向陽花木易爲春). ” 라는 시구를 써주었고, 우의정 윤사흔의 비문을 쓰기도 하였다.

1481년에는 금주령이 내려져 있었는데 무사들이 사후(射侯) 때 음주 여부를 논의하자, 예외없이 금주령에 따라야 된다. 고 주장하는 강직한 성품을 보였다.

 

김태좌(金台佐)

선조(宣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태좌(台佐)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천경(金天慶)

천경(天慶)1627(인조 5)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응참(應參응철(應哲)등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능한산성(綾漢山城)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여 헌종(憲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추증되었다.

 

金素月(김소월)선생의 전설.

 

소월은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소월의 시작활동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19255개벽에 시론 시혼 詩魂 을 발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집에는 그동안 써두었던 전 작품 126편이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그의 전반기의 작품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당시 시단의 수준을 한층 향상시킨 작품집으로서 한국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민요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발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은 안 흘리울리다.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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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공주 김씨(公州金氏) 남한에 총 1814가구, 754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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