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광양김씨)
본관(本貫): 강릉(江陵)
시조(始祖): 김황원(金黃元)
유래(由來):
신라(新羅)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謁智)의 후예(後裔)인 광양 김씨(光陽金氏)는 고려(高麗)의 명신(名臣)인 김황원(金黃元)을 시조(始祖)로 하여 광산 김씨(光山金氏)에서 분적(分籍)하였다.
[광양김씨을묘보(光陽金氏乙卯譜)]에 의하면 광양 김씨(光陽金氏)는 김흥광(金興光 : 광산 김씨의 시조)의 7세존 김양감(金良鑑)으로부터 광양(光陽)에서 기반(基盤)을 다져왔으며, 한림공(翰林公) 황원(黃元)의 대(代)에 이르러 가문(家門)의 기틀을 확고하게 마련하였다고 한다.
시조(始祖) 황원(黃元)은 서기 1045년(고려 정종 11)에 출생하여 일찍이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문장(文章)이 뛰어나 고시(古詩)로 명성을 떨쳤으며, 청렴 강직하였다
고 한다. 특히 그는 한림원(翰林院 )에 있을 때 시(詩)로써 요(遼)나라의 사신(使臣)을 맞이하여 사신을 크게 감동시켰다고 하며, 그를 시기 한 재상 이자위(李子威)의 모함으로 한때 파직되기도 하였으나 후에 선종(宣宗)에게 이름이 알려져 좌습유(左拾遺)·지제고(知制誥)에 등용되고 경산(京山) 부사(府使)로 나가 많은 치적(治績)을 쌓았다. 예종(睿宗) 때 와서는 중서사인(中書舍人 : 중서문하성 종4품 벼슬)이 되어 사신(使臣)으로 요(遼)나라에 가던 도중 북부지방의 대기근으로 백성이 굶어 죽는 참상을 목격하고 왕(王)에게 상주(上奏)하여 주(州)·군(郡)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했으며, 귀국 후 예부 시랑(禮部侍郞)과 국자제주 (國子祭酒)·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내고 첨서추밀원사(僉書樞密院事 )로 치사하였다.
한편 황원(黃元)의 아들 희석(希奭)이 고려조(高麗朝)에서 원외랑(員外郞)을 지냈으며, 손자(孫子) 영윤(永倫)과 증손(曾孫) 소는 판삼사사(判三司事)와 판도좌랑(版圖佐郞)을 각각 역임하여 가풍(家風)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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