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判(해주판씨)
본관(本貫): 해주(海州)
시조(始祖): 판해율(判海栗)
유래(由來):
해주 판씨(海州判氏)의 선조(先祖)는 고려 말엽(高麗末葉)에 충신(忠臣)으로서 왕을 보필하는 관직(官職)에 있었으나 간신배(奸臣輩)의 모함을 받아 반역의 누명을 쓰고 피화(被禍)되어 강화도(江華島) 근처의 섬으로 유배(流配) 도중에 풍파(風波)를 만나 배가 파선(破船)이 되어 표류(漂流)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한강(漢江) 하류에 있는 밤섬에 표착(漂着)하여 그 곳에 정착(定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 해주 판씨(海州判氏)는 처음 밤섬에 정착했던 선조의 휘자(諱字)를 판해율(判海栗)로 존모(尊慕)하고, 전국에 흩어진 성손(姓孫)들이 대동단결(大同團結)하여 족보(族譜) 편찬을 서두르고 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남한에 총59가구, 2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살고 있는 판영호(判榮鎬)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마포구 율도동(밤섬)에 살고 있었던 사손(嗣孫) 판봉석(判鳳石)이란 사람이 대대로 세전(世傳) 되어 오던 보첩(譜牒)을 보관하다가 1925년 대홍수로 밤섬 전역이 침수되었을 때 유실하여 선계를 실전하였다고 하며, 밤섬에 살고 있었던 후손들은 정부시책에 따라 1967년도에 마포구 와우산 중턱에 옮겨 살다가 점차 전국 각처로 이사를 가고 지금은 몇가구 남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 해주판씨는 처음 밤섬에 정착했던 선조의 휘자를 판해율(判海栗)로 존모(尊慕)하고, 전국에 흩어진 성손(姓孫)들이 대동단결하여 족보 편찬을 서두르고 있다.
<출전: 마포 밤섬사랑>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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