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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남양방씨(房)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房(남양방씨)

 

 

본관(本貫): 남양(南陽)

시조(始祖): 방현령(房玄齡)

유래(由來):

 

방(房)씨는 중국 청하(淸河)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방후(房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지명을 성으로 삼게 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 방(房)씨는 당(唐)나라 양공(梁公) 방현령(房玄齡)이 634년(당태종 정관8, 고구려 영류왕17) 고구려의 주청(奏請)으로 동래(東來)하여 남양(南陽)에 사적(賜籍)한 것이 시초가 된다.

그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후손들은 고려조에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보국공(三重大匡輔國公)에 오른 방계홍(房季弘)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선조(先祖)의 사적지(賜籍地)인 남양(南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방씨의 관향(貫鄕)은 남양을 비롯하여 수원(水原), 남원(南原), 온양(溫陽), 밀양(密陽), 양산(梁山)등 23본까지 문헌에 전해지나 모두가 남양 방의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원 방씨(水原房氏)의 시조(始祖)로 전하는 방정유(房貞儒:일명 지유)는 남양 방씨의 일세조 방계홍(房季弘)의 손자임이 밝혀졌다.

 

가문의 중요 인물

 

방의강(房儀康)

계홍(季弘)의 아들 의강(儀康)이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로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방진유(房珍儒)

진유(珍儒)는 추밀원 부사(樞密院府使)를 거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

 

방사량(房士良)

상호군(上護軍) 주(柱)의 아들 사량(士良)은 공양왕(恭讓王)때 직제학(直提學)을 거쳐 전의시승(典醫寺丞)을 지냈다.

 

방구행(房九行)

사량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구행(九行)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

 

방구달(房九達)

구달(九達)은 군자감 부정(軍資監副正)을 역임하여 대를 이어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방귀온(房貴溫)

1465(세조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 南陽 ). 자는 옥여(玉汝), 호는 금서(錦西). 의원이었던 사량(士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성(九成)이고, 아버지는 사정 ( 司正 ) 계문(戒文)이며, 어머니는 정존(鄭存)의 딸이다. 여러 대에 걸쳐 나주에서 살았다. 조광조 ( 趙光祖 )의 문인이다. 1495년(연산군 1) 진사가 되고, 1517년(중종 12) 전라도관찰사 조원기 ( 趙元紀 )로부터 부모상례를 잘 치르고 항시 마음을 돈독히 하며 바른 일에 철저하여, 효행이 지극한 자로 1518년 유일(遺逸)로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519년 현량과 ( 賢良科 )에 3등으로 급제,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다가 같은 해 기묘사화 ( 己卯士禍 )로 유배되었다. 1538년 이조판서 윤인경 ( 尹仁鏡 )의 상소로 인하여 신원(伸寃 :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방응현(房應賢)

1524(중종 19)∼1589(선조 22).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남양 ( 南陽 ). 자는 준부(俊夫), 호는 사계(沙溪). 남원 출신. 할아버지는 호조좌랑 귀화(貴和)이며, 아버지는 한걸(漢傑)이다. 일찍이 조식(曺植)· 이항 ( 李恒 )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향리의 사계천(沙溪川) 위에 집을 짓고 일생을 송시(誦詩)와 독서로 자적 ( 自適 )하는 가운데 과농(課農)·이포(理圃)· 관개 ( 灌漑 )·화죽(花竹) 등 농학분야의 생리문제(生理問題)에 관심을 두었으며, 동향의 임란의병장 변사정 ( 邊士貞 )과 친교가 두터웠다.

 

방원진(房元震)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의병. 자는 이성(而省), 호는 만오(晩悟). 증조가 한걸(漢傑)이며, 할아버지는 응현(應賢)이다. 정경세 ( 鄭經世 )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대박(梁大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28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3년간 문과에 대비하여 학업에 열중하였으나 정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 仁祖反正 ) 후 신흠 ( 申欽 )의 천거로 찰방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 ( 金長生 ) 휘하에서 소모관 ( 召募官 )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여산까지 진군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방복령(房復齡)

복령(復齡)은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선조(宣祖)로부터 <가히 대장부>라는 칭찬을 받고 공신(功臣)에 책록되어 명성을 떨쳤다.

 

 

<한민족대성보>에서 인용,.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21

기(箕),만(萬)

응(應),교(敎)

태(泰),봉(鳳)

25

규(圭)

29

혁(赫)

22

수(繡),욱(旭)

창(昌),성(聖)

준(濬)

26

진(鎭)

30

기(基)

23

두(斗),상(相)

익(翼),채(采)

27

원(源)

31

 

24

환(煥),세(世)

28

극(極)

32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방씨(房氏)는 남한에 총 5,371가구, 22,519명

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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