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양산김씨)
본관(本貫): 양산(梁山)
시조(始祖): 김연(金衍)
유래(由來):
양산 김씨(梁山金氏)의 시조 김연(金衍)은 고려에서 통사사인(通事舍人: 합문의 정 7 품 벼슬)을 지냈고, 그의 손자 맹(猛)이 목종(穆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를 거쳐 1020년(현종 11) 송(宋)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 이부 시랑(吏部侍郞)·중추부사(中樞副使) 등을 지내고, 의춘현(宜春縣 : 양산의 옛 지명) 개국남(開國男)에 봉해진 후 중추원사(中樞院使)·태자소부(太子少傅)·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고 크게 명성을 날렸으므로, 후손들이 김연(金衍)을 시조로 하고 양산(梁山)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덕부(金德符)
맹(猛)의 아들 덕부(德符)가 덕종(德宗 : 고려 제 9대 왕) 때 음보(蔭補)로 벼슬에 등용되어 1070년(문종 24) 태자 빈객(太子賓客)을 거쳐 상서 우복야(尙書右僕射 : 중앙정치 기구인상서도성의 정 2 품 벼슬)에 이르렀다.
김치현(金致賢)
조선조에 와서는 치현(致賢)이 1496년(연산군 2)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황해도 관찰사(黃海都觀察使)를 지냈다.
김응인(金應寅)
진사(進士) 양(亮)의 아들 응인(應寅)은 명종(明宗) 때 문과 급제하여 해남 현감(海南縣監)· 문의 군수(文義郡守)· 능주 목사(綾州牧使) 등 외관직을 거쳐 홍문관 교리와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하였다.
김경선(金景善)
습독관(習讀官) 응호(應虎)의 아들 경선(景善)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김수남(金秀南)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
김안선(金安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을 역임.
김의겸(金義兼)
호조 참의(戶曹參議)
김치련(金致鍊)
부총관(副摠管)
김중겸(金重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김희(金禧)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김호광(金好光)
공신(功臣)에 오름.
김현추(金縣秋)
부호군(副護軍)
김상추(金尙秋)
첨절제사(僉節制使)
김감(金鑑)
사직(司直)
김기정(金起鼎)
의금부사(義禁府事)로 가문을 대표했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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