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趙(진보조씨)
본관(本貫): 진보(眞寶)
시조(始祖): 조용(趙庸)
유래(由來):
진보 조씨(眞寶趙氏)의 시조(始祖) 조용(趙庸)은 지린(之 : 배천 조씨의 시조)의 11세손이며,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운주(雲柱)의 아들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문장(文章)과 학행(學行)이 탁월(卓越)했으며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삼사 도사(三司都事)·계림부 판관(鷄林府判官) 등을 거쳐 예조 총랑(禮曹摠郞)에 올랐다. 1392년(태조 1)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면서 벼슬에서 물러나 야주군(夜珠郡)에 은거(隱居)하자 조정(朝廷)에서 그의 절의(節義)를 가상(嘉尙)히 여겨 진보군에 봉하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증직(贈職)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진보(眞寶)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조담(趙聃)
시조 용(庸)의 맏아들 담(聃)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현감(縣監)을 지냈다.
조이(趙耳)
용의 둘째 아들 이(耳)는 함경도 평사(咸鏡道評事)를 역임한 후 예조 참의(禮曹參議)에 증직되었다.
조청(趙聽)
이(耳)의 아들 청(聽)이 함경도 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를 역임한 후 예조 참의(禮曹參議)에 증직되었다.
조문행(趙文行)
청의 아들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진보 조씨(眞寶趙氏)는 남한(南韓)에 총 168가구, 73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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