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程(하남정씨)
본관(本貫): 하남(河南)
시조(始祖): 정사조(程思祖)
유래(由來):
정씨(程氏)의 선계(先系)는 원래 중국(中國) 황제(皇帝)의 후손(後孫) 백부(伯符)에서 시작되며, 그의 45세손 원담(元潭)이 신안 정씨(新安程氏)로 분적(分籍)하였고, 원담의 31세손 우(羽)는 하남 정씨(河南程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우(羽)의 18세손 사조(思祖)는 노국공주(魯國公主)가 입국(入國)할 때 공한림(孔翰林)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려 충정왕조(忠定王朝)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냈고, 공민왕(恭愍王) 때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으며, 식읍(食邑)을 하사(下賜) 받았으므로 후손들은 사조(思祖)를 동래조(東來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여 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정억강(程億綱)
조 헌(趙 憲)의 제자인 억강(億綱)이 당대에 뛰어났다.
그는 학문(學問)과 기절(氣節)이 뛰어난 선비로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충주(忠州) 달천(達川)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였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어 훌륭한 가문을 빛냈다.
정춘한(程春漢)
춘한(春漢)은 선조(宣祖) 때 문과에 급제하여 풍천 현감(豊川縣監)을 거쳐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랐으며, 이복(履福)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정연성(程連城)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했다.
정진발(程振發),정부쾌(程敷快),정진록(程振錄)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정대홍(程大泓),정계홍(程桂泓),정처근 (程處根)
다 같이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정병우(程炳宇)
좌윤(漢城府左尹)을 지낸 병우(炳宇)는 하남 정씨 가문을 빛냈다.
출처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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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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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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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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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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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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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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炫(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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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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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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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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淳(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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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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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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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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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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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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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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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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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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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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奎(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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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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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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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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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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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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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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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하남 정씨(河南程氏)는 남한(南韓)에 총 1,906가구, 8,0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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