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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정선전씨(全)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全(정선전씨)

 

 

본관(本貫): 정선(旌善)

시조(始祖): 전선(全渲)

유래(由來):

 

 정선 전씨(旌善全氏)의 도시조 전 섭(全 攝)은 백제 건국에 공을 세워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으며, 섭의 8세손 선(渲)이 신라 내물왕 때 백제로부터 대광공주(大光公主)를 배행(陪行)하고 신라에 들어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지냈으며 전법 판서(典法判書)에 올라 정선군(旌善郡)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선(渲)을 시조로 받들고, 정선(旌善)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면서 우리나라 모든 전씨의 연원(淵源)을 이루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전이갑(全以甲), 전의갑(全義甲)

선(渲)의 9세손 이갑(以甲)과 의갑(義甲)형제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다.

 

전영보(全英甫)

후손 영보(英甫)는 대호군(大護軍), 밀직부사(密直副使), 대사헌(大司憲)등을 역임했다.

 

전이도(全以道)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하였다가 왕의 즉위로 귀국하여 낭장에 임명되고, 1352년(공민왕 1)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55년 의성창사(義城倉使)로 있을 때 왕이 광명사(廣明寺)에 행차하여 승(僧)을 공양하는 데 능히 일을 처리하지 못하여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되었다.

1359년 흉년이 크게 들자 예부시랑으로 있으면서 경상도진제사(慶尙道賑濟使)로 파견되었는데, 돌아와서 지방수령직에 서리 ( 胥吏 )들이 다수 임용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저지른다고 파악하고, 과거에 합격한 사류(士流)만으로 수령에 충당할 것을 청하였으나 채택되지 못하였다.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를 지낸 뒤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福州 : 지금의 안동)로 파천(播遷)한 공민왕을 호종(扈從)하였다. 이 때 왕명을 받아 홍주도(洪州道)에서 군사를 점검하였고, 1363년에는 호종1등공신(扈從一等功臣)과 수복경성2등공신(收復京城二等功臣)에 봉하여졌다.

한편, 공민왕을 반대하던 최유 ( 崔濡 )가 원나라에서 음모를 꾸며 왕을 폐하고 덕흥군 ( 德興君 )을 세워 요양(遼陽)의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전하여지자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안동도병마사로 임명되어 출동하였다.

1364년 여진족의 삼선(三善)·삼개(三介)의 무리들이 동북면에 침입하자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임명되어 도지휘사 ( 都指揮使 ) 한방신 ( 韓方信 )을 보내 삼관(三關)·홀면(忽面)방면을 방어하도록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전오륜(全五倫)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호는 채미헌(採薇軒). 1391년(공양왕 3) 우상시(右常侍)· 좌산기상시 ( 左散騎常侍 )·형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 ( 杜門洞 )에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에 의하여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다. 뒤에 풀려나서 서운산(瑞雲山)에 은거하였다. 두문동 72인 중의 한 사람이며, 뒷날 안의의 서산서원 ( 西山書院 )에 제향되었다.

 

전봉학(全奉學)

한말에 순국지사(殉國志士)로 유명하다.

 

전덕명(全德明),전예순(全禮淳)

독립운동가로 기울어져 가는 조국의 광복과 한민족의 자유수호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가문을 빛냈다.

 

전덕기(全德基)

1875(고종 12)∼1914. 감리교 목사·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9세 때 어버이와 사별한 뒤 작은아버지의 집에서 자라났다. 1892년 스크랜톤(Scranton,M.F.) 선교사의 감화를 받아 1896년 세례를 받고 상동교회 ( 尙洞敎會 )에 입교하였다.

1896년 서재필 ( 徐載弼 )에 의하여 조직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이 협회의 핵심적 간부로 독립운동가들과 친교를 두터이 하였다.

독립협회의 목적인 자주독립·자유민권사상과 자강개혁운동(自强改革運動)은 기독교복음의 내용과 일치함을 깨달았고, 그의 신앙은 자연스럽게 민족운동과 직결되었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에는 상동교회에서 스크랜톤을 도와 목회에 전념하였다. 1902년에는 감리교선교회에서 전도사 임명을 받고 본격적인 목회활동에 나섰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국감리교청년회연합회(당시의 엡웰청년회)를 소집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조약체결에 협조한 을사오적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기 위하여 정순만과 더불어 평안도 출신 장사 수십 명을 서울에 불러들여 암살단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거사계획은 일본경찰에 의하여 저지되어 실패로 돌아갔다. 1907년에는 이준 ( 李儁 )과 더불어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헤이그거사계획을 성사시켰다.

같은 해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비밀결사 민족독립운동단체인 신민회 ( 新民會 )를 조직하는 데에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1904년 그가 상동교회 안에 세운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은 1907년부터 신민회의 교육기관이 되어 활발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감리교 연회(年會)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담임목사가 되면서 당시 상동교회를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12년 ‘105인사건’으로 불리는 ‘신민회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도 이 사건의 혐의를 받고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발병, 병보석이 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전협(全協)

1878(고종 15)∼1927. 독립운동가. 일명 전국환(全國煥). 서울 출신. 1898년 농상공부주사(農商工部主事)가 되고 이어 제주군수(濟州郡守)·일진회평의장(一進會評議長)·부평군수(富平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독립운동 자금을 염출할 목적으로 사주전(私鑄錢)을 만들려다가 발각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09년 만주 해룡현(海龍縣)으로 망명하였다가 1919년 중국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들과 만나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로 협의하고 귀국하였다.

1920년 귀족·관료·유림·학생·종교단체·상공단체·부인회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비밀결사 대동단(大同團)을 조직하여 김가진 ( 金嘉鎭 )을 총재로 추대하고 또 기관지 ≪대동신문 大同新聞≫을 발간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이 해 의친왕 이강 ( 李堈 )과 귀족 중 중망(衆望) 있는 사람을 중국으로 망명시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합세시키기로 결정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 안창호 ( 安昌浩 )와 연락, 협의하여 승낙을 얻었다. 먼저 총재 김가진을 상해로 탈출시킨 뒤 의친왕의 망명공작을 추진하였다.

1920년 11월 의친왕을 가장시켜 압록강을 넘어 만주 안동으로 탈출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그곳에서 발각됨으로써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동단 조직이 발각되어 수많은 동지와 함께 붙잡혔다.

그는 이 사건의 주동자로 경성지방법원·복심법원·고등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복역 7년 만에 병보석되었으나 사망하였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전인학(全仁學)

1896 ∼ ?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길주 출신. 1910년 국권상실 후 가족을 이끌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이정국(李政國) · 신대용(申大勇) 등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하기로 뜻을 모으고 만주 · 시베리아 각지를 순회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였다.

1919년 3 · 1운동 때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베리아 각지에 〈 독립선언서 〉 를 배포하였다. 신한촌 (新韓村)에서 ≪ 한인신보 韓人申報 ≫ 가 발간되자 총리 겸 기자로 있으면서 항일기사를 썼다.

1920년 대한국민의회 ( 大韓國民議會 )가 발족할 때 선전부장이 되어 러시아혁명군사령부 연해주 선전국장 포리소와 협의, 일본군대에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전단을 돌리다가 붙잡혔다. 4년형을 선고받고 청진에서 복역중 감옥에서 비밀결사 적유의용단(赤油義勇團)을 결성하고 1923년 탈옥을 감행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공판장에서 그는 “ 죄수도 또한 사람이라 자유가 귀하기는 고금(古今)이 없다. 그러므로 모두 그 피를 흘리고 그 몸이 부서져도 아까운 줄을 모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이 자유가 없으면 비록 살아 있어도 이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이 적게는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크게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서 분투한 이유이다. ” 라고 말하였다.

공판 후 5년간 경성에서 복역하였다. 1926년 만기출옥한 뒤 북간도 혼춘(琿春)으로 돌아가 일생동안 독립운동을 하였다.

 

전덕원(全德元)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호는 호은(湖隱) · 정송( 詳 松). 평안북도 용천 출신. 유인석 ( 柳麟錫 )의 문인이다.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자, 각국 공사에게 격문을 보내고 의병을 일으켜 관서지방에서 항전하였다. 1906년 체포되어 유형 15년의 선고를 받고 황주에 유배되었다.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대한독립단 ( 大韓獨立團 )을 조직, 군사부장이 되어 10여 차례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2년 2월 각 단체 통합기관으로 대한통군부 ( 大韓統軍府 )가 결성되었을 때 재무부장이 되었다. 그 뒤 8월 대한통의부 ( 大韓統義府 )로 개편되자 경무총감(警務總監)에 추대되었다.

1923년 의군부 ( 義軍府 )를 조직하고 군무통감(軍務統監)으로 소속독립군을 지휘, 통솔하였다. 같은 해 8월 소속유격대장 이경일 ( 李京日 ), 소대장 전일록(全日錄)에게 명하여 50명의 대원을 인솔,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독립군은 평안북도 의주군 청성진(淸城津)을 공격, 경찰관주재소 · 세관출장소 · 우편국을 기습, 파괴하고 일본경찰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 뒤 계속 국내진입작전을 수행하였는데, 1927년 2월 대규모의 작전을 준비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2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자 형량이 가볍다고 힐책한 뒤, 죄명이 강도죄인 데 대해 항의하였다. 출옥 후 동지들과 독립운동사를 편찬하며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박상문(朴尙文)의 밀고로 다시 붙잡혀 복역 중 옥사하였다.

대한제국 황실에 충실한 복벽주의자로서, 상투에 두루마기를 입고 연호도 황실 연호를 사용하여 독립운동자간에는 수구파로 지칭된 인물이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59

桂(계)

67

鏞(용)

75

爔(희)

60

烋(휴)

68

濬(준)

76

璿(선)

61

珪(규)

69

樟(장)

77

鑂(훈)

62

兌(태)

70

燾(도)

78

洽(흡)

63

瀚(한)

71

珽(정)

79

杞(기)

64

穆(목)

72

鎰(일)

80

熇(고)

65

炯(형)

73

泓(홍)

81

培(배)

66

珣(순)

74

桓(환)

82

鈺(옥)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선 전씨는 남한에 총 30,623가구, 124,99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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