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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진안장씨(張)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張(진안장씨)

 

 

본관(本貫): 진안(鎭安)

시조(始祖): 장원렬(張原烈)

유래(由來):

 

 진안 장씨(鎭安張氏)의 시조는 충헌곤(忠獻公) 정필(貞弼)의 13세손 장원렬(張原烈)이다.

 원렬은 고려 신종(新宗) 때 쌍성총관(雙城摠管), 우정승(右政丞)을 지낸 양위(良位)의 둘째 아들로 고려에서 판서 평리(判書評理)를 지냈다고「장씨상계세보(張氏上系世譜)」에 기록하고 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장사익(張思益)

원렬의 손자 사익(思益)이 응양장군(應楊將軍)을 지낸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진안군(鎭安君)에 봉해졌다.

 

장희주(張希胄)

원렬(原烈)의 맏아들 희주(希胄)가 고려에서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장용길(張用佶)

원렬의 차남 용길(用佶)은 부사(府使)를 역임했다.

 

장초(張礎), 장용일(張龍鎰)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장용기(張龍起)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장재손(張載孫)

참의(參議)를 역임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진안 장씨는 남한에 총 173가구, 74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윤경의 효행.

 

소리개가 채어 간 쇠고기

 

한 집안에서 4대에 걸쳐 다섯 사람이 충효로 이름이 나고, 또한 나라로 부터 정려를 받게 된 것은 드문 일이다.

 

장 윤경은 지금으로부터 433 년 전 1552(명종 7)에 태어났다. 윤경은 총명하고 어질며 어버이 섬기기를 지성껏 했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현 구미시 인동에서 영덕군 달산면 옥산동으로 이사해 살게 되었다.

 

윤경이 나이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 때 어른 못지않게 상주 노릇을 잘 하였으며, 그 애통해 함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 그리워하는 정을 이기지 못 하여, 열 네 살 때 다시 어머니의 복을 입고 3 년 동안 여막에서 죽으로 끼니를 이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윤경을 참 효자라고 칭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병환을 얻어 앓아눕게 됐다. 아무리 좋은 약을 구해다 써 보아도 아버지의 병환에는 별 효험이 없었다.

 

그 때 아버지는 앓으면서 말하기를

얘야, 내가 쇠고기 국을 먹었으면 병이 꼭 나을 것 같다.” 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윤경은 즉시 멀리 영덕읍까지 달음박질해 갔다. 쇠고기를 사들고 수십 리 길을 되돌아오고 있는데, 중간쯤 왔을 때 갑자기 커다란 솔개 한 마리가 날아와 들고 가는 쇠고기를 툭 채 가지고 가 버렸다. 윤경은

아차 ! 저 놈의 솔개가....”

하고 순간적으로 외쳤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영덕읍에 가 서 새로 쇠고기를 사 가지고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왔다. 웬 일인가? 누워 계시던 아벼지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 앉아 있지 않는가? 깜짝 놀라 윤경은,

아니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어떤 솔개 한 마리가 쇠고기를 물고 와서 우리 집 울타리에 갖다 놓기에 그것을 끓여 먹었더니 몸이 거뜬하길래 일어났다.”

고 말했다.

 

이상히 여긴 윤경은 재빨리 고기를 쌌던 꾸러미를 살펴보았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가져 오다 소리개에게 빼앗긴 그것이었다. 이렇게 미물인 솔개가 윤경의 효성을 알고 그것을 미리 물어다 준 것이다.

임진왜란 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들 모두 피난을 갔으 나 윤경은 그대로 남아 3 년 동안 아버지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지냈다. 그 동안 죽만 먹고 간장이나 소금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제사가 다가오면 여러 날 목욕재개하고 가장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제사를 올렸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칭송해 마지않았다.

 

윤경은 선조 대왕을 비롯하여, 왕대비 , 대왕대비 등 세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죽을 먹으면서 친상을 당했을 때와 다름없이 슬퍼했다.

윤경은 국상의 제례가 끝나기 전인 인조 10년인 1632년에 81 세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 때 유언하기를

내가 국상 중에 죽게 되니 죄스럽기 그지없다. 행여 내가 죽은 후라도

고기를 제사에 쓰지 말라.”

고 당부했다.

그 후 자손들이 처음으로 소상 때 고기를 제수로 사용하였더니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어 닥

쳐 제상을 넘어뜨렸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겼 다.

 

그 뒤 윤경의 친구들이 치전 때 고기만 올렸더니 난데없이 돌개바람이 일어났다. 이런 연고로 윤경의 유언대로 제사 때 고기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숙종 대왕은 윤경이는 평생을 효행과 충성으로 살다 간 사람이란 향리 사람들의 보고를 듣고 이를 가상히 여겨 특히 자헌대부 이조판서(資憲大夫吏曹判書)를 증직하고이름을 충효로 바꾸게 하였으며, 또 후손에게는 온갖 잡역을 면제하게 했다.

 

윤경이 죽어서까지 남긴 충효의 정신은 대대로 그 후손에까지 미쳤다. 윤경 의 증손인 지건은 숙종조에 어버이 상을 당하자 죽으로 연명하고 묘 옆에 여막을 지어 살았다. 지건의 아들인 세기가 매일 와서 거처를 살폈다. 어느 날 밤에 지건이 거처하던 집이 누가 불을 질러 지건이가 타 죽고 말았다. 아들인 세기는 슬퍼 울부짖으면서 아버지를 태워 죽인 원수를 찾아 헤맸다. 원수는 바로 한 마을에 사는 좀도둑이었다.

 

어느 날 밤에 좀도둑은 울타리를 넘어 남의 논의 벼를 벴다. 지건이가 이를보고 남의 벼를 베지 말라고 말렸다. 좀 도둑은 자신의 행동이 마을에 알려질까봐 겁을 먹고 이튿날 밤 몰래 가서 지건을 태워 죽였던 것이다.

세기는 아버지의 원수인 좀도둑을 붙들어 거적대기에 싸서 불에 태워 죽었다. 이 사실이 관에 알려져 관에서는 지건과 세기의 효심에 감동되어 부자 정려각을 세웠다.

 

또 윤경의 7대 손인 수의는 7 세에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15 세에 다시 복을 입기도 했다. 수의는 정조 대왕이 돌아가시자 북쪽을 향하여 슬피 울고, 험한 음식을 먹으며 잠자리도 삼가했다. 정조 대왕의 3 년상을 마칠 때 천릿길 서울을 멀다 않고 걸어 올라가 궁문 아래서 통곡했다. 예조에서 이를 알고 중추부사라는 관직을 내리고 정려하였다.

 

윤경의 같은 7대 손인 성린 역시 노모에게 효양하기를 지극히 했다. 성린은 노모가 몸져 눕게 되자 소리 죽여 울면서 음식을 일체 먹지 않았다. 어느날, 노모는 살아 있는 쇠간을 먹고 싶다기에 먹이던 소를 잡아 생간을 드렸더니 엿새 동안 더 살다가 돌아가셨다.

 

이 고을 유생들이 이 사실을 연명으로 관에 진정했다. 이 사실을 알고 수의를 내리고 정려각을 새우도록 명했다. 이 밖에도 9대 손 봉주, 11대 손 영석 등 이름난 효성들이 줄을 이었으니 이를 본 후세 사람들은

과연 핏줄은 무섭고 천성이란 그대로 맥을 이어간다·”

고 입을 모아 자랑하고 있다.

 

출전영덕군 지품초등학교 이 교사

참고 문헌 盈寧勝覽, 孝烈行誌

 

 

 

 

출전 <한민족대성보>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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