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張(진천장씨)
본관(本貫): 진천(鎭川)
시조(始祖): 장유(張裕)
유래(由來):
진천 장씨(鎭川張氏)는 장씨 도시조 정필(貞弼)의 후손 장유(張裕)를 시조로 한다. 유(兪는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 좌우위중추원사(左右衛中樞院事), 문하시중(門下侍中)등을 지냈고, 예산군(禮山君)에 봉해졌다가 다시 진천군에 개봉(改封)되었다고「진천장씨세보(鎭川張時世譜)」에 기록하고 있다.
그 후 후손들은 진천에서 정착 세거 하며 진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장빈(張賓)
유(兪의 손자 빈(賓)이 1164년(고려 의종 18)에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판도판서(版圖判書)를 거쳐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냈다.
장진영(張鎭永)
유의 증손 진영(鎭永)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라 이름을 날렸다.
장송(張松)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름.
장하일(張河馹)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을 역임하였다.
장기손(張起孫)
부사(府使)를 역임했다.
장희안(張希顔)
참판(參判)을 지낸 희안(希顔)은 훌륭한 가문을 유명하게 하였다.
장관일(張貫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한 관일(貫一)도 유명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진천 장씨는 남한에 총 227가구, 98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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