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張(창녕장씨)
본관(本貫): 창녕(昌寧)
시조(始祖): 장천일(張千鎰)
유래(由來):
창녕 장씨의 시조 장천일(張千鎰)은 태사공(太師公) 정필(貞弼)의 6세손이며,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효익(孝翼)의 아들이다.
천일은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1228년(고종 15)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어 사신으로 몽고에 다녀와 국자감 좨주(國子監祭酒)가 되었으며, 그 후 2차례나 몽고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난을 일으키자 대장군(大將軍)으로 경상도 수로방호사(慶尙道水路防護使)가 되어 난을 평정하였고, 이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지냈으며, 충렬왕조(忠烈王朝)에는 지첨의부사(知僉議府使), 보문각 대학사(寶文閣大學士)에 오르고 하산(夏山:창녕의 별호)군(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천일(千鎰)을 시조로 삼고 본관을 창녕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장계회(張季會)
조선조에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장계지(張繼池)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을 역임하였다.
장응성(張應星)
부사(府使)를 지낸 응성(應星)등이 가문을 더욱 빛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창녕 장씨는 남한에 총 1,151가구, 4, 75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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