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章(거창장씨)
본관(本貫): 거창(居昌)
시조(始祖): 장종행(章宗行)
유래(由來):
장씨(章氏)는 중국 하간(河間:지금의 직예성 진해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 문헌에 전해지는 본관은 거창(居昌)과 복성(福城:보성 지방)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거창(居昌) 단본으로 알려져 있다.
거창(居昌) 장씨의 시조 장종행(章宗行)의 선대는 실전(失傳)되어 알 수 없으므로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거쳐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겸 춘추관사(春秋館事)를 지낸 그를 시조로 하고 그의 아들 두민(斗民)이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아림(娥林:거창의 별호)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거창으로 하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장영순(章永巡)
두민(斗民)의 아들 영순(永巡)이 고려의 절신(節臣) 이양중(李養中)의 사위로 공민왕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등을 지냈다.
장참장(章參莊)
후손 참장(參莊)은 공양왕 때 돈령부 부정(敦寧府副正)을 지내고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거창군 웅양면 한현촌으로 퇴거(退居)하여 그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장헌휘(章獻輝)
선조 때 훈련원정(訓鍊院正)으로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순절하여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장헌서(章獻瑞)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장석규(章錫奎)
석규(錫奎)는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거창 장씨는 남한에 총 1,039가구, 4,22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