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林(조양임씨)
본관(本貫): 조양(兆陽)
시조(始祖): 임세미(林世味)
유래(由來):
조양 임씨(兆陽林氏)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언수(彦脩)의 넷째 아들인 임세미(林世味)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세미(世味)는 고려말(高麗末)에 광정대부(匡靖大夫)로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거쳐 대광찬성좌복야를 지내고 조양군(兆陽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평택 임씨(平澤林氏)에서 분적(分籍)하여 조양(兆陽)을 본관(本貫)으로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임옥산(林玉山)
1432(세종 14)∼1502(연산군 8). 조선 전기의 무신·학자. 본관은 조양 ( 兆陽 ). 자는 인보(仁甫), 호는 국헌(菊軒). 아버지는 곡성훈도 사강(士綱)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이조참판을 지낸 순(淳)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5년 후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감직장에 재임중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하여 사직하였다. 1474년(성종 5) 특지(特旨)에 의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나, 몇달 뒤 아버지의 봉양을 위하여 사직하려 하자 그의 고향 남원과 인접한 장수현감에 임명되었다.
또한, 1477년에는 효행으로 도총부도사에 승진되었다. 1496년(연산군 2) 능성현령에 재임중 청렴한 생활태도로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 뒤 1498년 북도병마절도사·병조참판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못하였으며, 그가 죽자 조정에서 예관 ( 禮官 )을 보내 치제(致祭)하도록 하고 정려가 내려졌다.
전라북도 장수의 압계사(鴨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국헌유고≫가 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조양 임씨(兆陽林氏)는 남한(南韓)에 총 5,456가구, 23,68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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