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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임씨(任)

청남이메일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任(장흥임씨)

 

 

본관(本貫): 장흥(長興)

시조(始祖): 임호(任顥)

유래(由來):

 

장흥임씨(長興任氏)의 시조(始祖) 임호(任顥)는 본래 중국(中國) 소흥부(紹興府) 출신으로 중국 헌원계임씨(軒轅系任氏)의 109세손이자 소흥 임씨(紹興任氏 : 소흥계 임씨에서 분적)의 시조인 임 약(任 )의 손자이다.

「승석가부해동설(乘石 浮海東說)」에 의하면 송(宋)나라에서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과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했던 임 호(任 顥)가 고려(高麗) 정종(靖宗 : 10대 왕, 재위기간 : 1034∼1046)년간에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귀화한 것으로 전하며, 남해안(南海岸)에 있는 정안현(定安縣 : 현 전남 장흥군 관산읍의 임자도(任子島)에 처음 기착(寄着)하여 예로부터 이름난 명산으로 알려진 천관산(天冠山)밑의 당동(堂洞)에 터를 잡고 장흥 임씨(長興任氏)의 연원(淵源)을 이루게 되었다.

그의 아들 의(懿)가 선종(宣宗) 때 우승선(右承宣)으로 등용되어 숙종조(肅宗朝)에서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한 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하고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손자(孫子) 원후(元厚)가 인종(仁宗)의 국구(國舅)로 정안부원군(定安府院君)에 봉해짐으로서 임 호(任 顥)를 시조로 받들고 의(懿)를 일세조(一世祖)하여 정안 임씨(定安任氏)로 칭관(稱貫)하다가 정안현(定安縣)이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로 승격됨에 따라장흥 임씨(長興任氏)로 개칭하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임원후(任元厚)

사기(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원후(元厚)는 그릇이 넓고 깊으며 풍채가 엄하고 중후했다고 하며, 경사(經史)에 널리 통달하여 재상에 올랐어도 근검하고 청백하기로 소문났었다고 한다.

특히 원후는, 다른 재상들이 모두 반적 묘청(妙淸)을 흠앙하고 믿었으나 홀로 쫓지 않아 사람들이 그의 밝은 지감에 탄복하였으며, 판이부(判吏部)에 임명되어서는 인사행정이 매우 공정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옛날의 산도(山燾 : 진나라 사람으로 이부 상서가 되어 훌륭한 인재를 많이 등용 하였다.) 라고 칭했다.

 

임유(任濡)

1149(의종 3) ∼ 1212(강종 1). 고려 후기의 명신(名臣). 초명은 극인(克仁). 수상을 지낸 원후(元厚)의 넷째아들이며, 인종의 비인 공예태후 ( 恭睿太后 )와는 남매가 된다.

문음 ( 門蔭 )으로 진출한 뒤 명종초에 과거에 급제하고, 1187년(명종 17)에 예부시랑으로 금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좌승선을 거쳐 참지정사가 되고, 1197년에는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郎平章事判吏部事)에 이르러 20년 가까운 기간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

특히, 세 차례의 지공거와 한 차례의 동지공거를 역임하여 모두 네 차례나 과거를 주관하여 조충(趙沖) · 이규보 ( 李奎報 ) · 김창 ( 金敞 ) 등 많은 재추(宰樞)를 문생으로 두어 큰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또한, “ 제고 ( 制誥 ) 16년에 일시의 책문(冊文)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 라고 할 만큼 대단한 문장가였으며, ‘ 가세(家世) · 세위(勢位)를 가지고 남에게 교만하지 않은 ’ 인품의 소유자이기도 하였다. 희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양숙(良淑)이다.

 

임익(任翊)

? ∼ 1301(충렬왕 27). 고려 후기의 문신. 재상을 지낸 경겸(景謙)의 아들이다. 충렬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279년(충렬왕 5) 밀직부사에 올랐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고 전고(典故)에 밝아 한때 최우 ( 崔瑀 )의 아들 의( 洑 )에게 예절을 가르쳤으며, 대사성 · 동수국사 ( 同修國史 ) 등 교육이나 역사를 편찬하는 관직을 맡았다. 1279년에는 밀직부사에 오르고, 왕명을 받들어 고려 왕실의 세보(世譜)인 ≪ 선원록 璿源錄 ≫ 을 찬술하였다.

1295년에는 김변(金 芚 )과 함께 원나라 세조 ( 世祖 )의 사적을 편찬하기도 하였는데 모두 현전하지 않는다. 찬성사로 치사하였다

 

임서종(任瑞宗)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개국 초기에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역임했다.

 

임헌(任獻)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다.

 

임계영(任啓英)

임진왜란 때 무공(武功)을 세웠던 호남 의병장(湖南義兵將) 계영(啓英)이 유명했다.

 

임발영(任發英)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책록 됨.

 

임백영(任百英)

문장(文章)과 병략(兵略)에 뛰었났다.

 

임희진(任希璡)

해남의병장으로 유명했다.

 

임계영(任啓英)

1528(중종 23)∼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홍보(弘甫), 호는 삼도(三島). 아버지는 희중(希重)이다.

1576년(선조 9)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진보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전 현감 박광전(朴光前), 능성현령 김익복(金益福), 진사 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와병중이던 박광전 대신 의병장으로 추대되고, 순천에 이르러 장윤 ( 張潤 )을 부장으로 삼았다. 다시 남원에 이르기까지 1,000여명을 모집하여 전라좌도 의병장이 되었다. 전라우도 의병장 최경회 ( 崔慶會 )와 함께 장수·거창·합천·성주·개령 등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1593년 제2차진주성싸움에 그는 부장 장윤에게 정예군 300명을 이끌고 먼저 성에 들어가게 하고, 자신은 밖에서 곡식과 무기를 조달하다가 적이 이미 성을 포위하였으므로 성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성의 함락과 함께 장윤은 전사하였는데, 그는 함께 죽지 못한 것을 종신토록 한스럽게 생각하였다. 선조가 환도한 뒤에 양주·정주·해주·순창 등지의 목사를 역임하였다. 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임발영(任發英)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장흥(長興). 아버지는 희성(希聖)이다.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뜻을 바꾸어 무과를 지망하였는데 평소 그의 이름을 알고 있던 시험관이 원서를 받아주지 않자 왕에게 소를 올렸고 왕은 그 뜻을 기특하게 여겨 선전관으로 특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종묘서영(宗廟署令)으로서 두 손으로 종묘의 신주 ( 神主 )를 받들어 모시고 왕을 의주까지 따라가니 왕이 크게 감격하여 손을 잡고 위로하였으며, 그날로 무과를 보게 하니 그 무과는 오로지 그를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무과에 급제한 뒤 안주목사가 되고 이듬해에는 운량사(運糧使)로 군량수송에 공을 세웠다. 1604년 공신을 책정할 때에는 이미 사망한 뒤였으나 호성공신 ( 扈聖功臣 ) 3등으로 책정되어 예양군(汭陽君)에 추봉되고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임만기(任萬紀)

숙종(肅宗) 때 순천(順天)과 나주(羅州)의 영장(營將)을 거쳐 광양 중군(光陽中軍)과 숙천 부사(肅川府使)를 역임했다.

 

임제원(任濟遠)

영조(英祖) 때 등과(登科)하여 만경 현령(萬頃縣令)·양산 군수(梁山郡守) 등을 지냈던 제원(濟遠)이 유명했다.

 

임병관(任炳琯)

한말(韓末)에 와서는 <삼절(三絶)>로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임병국(任炳國)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締結)되자 국권(國權) 회복에 의거(義擧) 했던 병국(炳國)이 장흥 임씨를 더욱 빛냈다.

 

 

출전 <하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23

錫(석),鉉(현)

29

洙(수)

35

根(근)

24

泰(태)

30

榮(영),相(상)

36

炯(형)

25

模(모),植(식)

31

煥(환)烈(열)

37

達(달)

26

炳(병),炯(형)

32

敎(교)

38

鎬(호)

27

圭(규)

33

鐸(탁)

39

 

28

鐘(종)

34

漢(한)

40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장흥 임씨(長興任氏)는 남한(南韓)에 총 7,777가구, 34,14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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