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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단양장씨(張)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張(단양장씨)

 

 

본관(本貫): 단양(丹陽)

시조(始祖): 장순익(張順翼)

유래(由來):

 

 단양 장씨(丹陽張氏) 는 동원(同源)이면서도 계보(系譜)를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다.

 선단양(先丹陽)으로 불리우는 첫째 계통은 장씨(張氏)의 도시조(都始祖)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의 증손인 지현(之賢)의 아들 장순익(張順翼)이 고려(高麗) 때 금자 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라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단양으로 삼게 되었고, 후단양(後丹陽)으로 불리우는 둘째 아들 장갑용(張甲用)과 세째 장무용(張戊用)을 관조(貫祖)로 하는 계통이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장재일(張載鎰)

단양군(丹陽君) 순익(順翼)의 아들 재일(載鎰)이 고려조에서 상장군(上狀軍)을 역임했다.

 

장한문(張漢文)

재일의 아들 한문(漢文)은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하여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져서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장윤화(張允和)

 한편 조선조(朝鮮朝)에서 황해 감사(黃海監司)와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역임했던 중란(仲蘭)의 아들 윤화(允和)는 정용낭장(精勇郎將)으로 한양환도(漢陽還都)에 공(功)을 세워 단산군(丹山君)에 봉해졌으며, 태종(太宗)과  동갑계원(同甲契員)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장지(張祉)

윤화의 아들 지(祉)는 강원 감사(江原監司)를 지내고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왕위(王位)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隱居)하며 매서운 절개를 지켰다.

 

장윤덕(張胤德)

1872(고종 9)∼1907.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원숙(元淑), 호는 성암(惺菴). 경상북도 예천 출신. 재안(載安)의 아들이다.

일찍이 예천군 수서기(首書記)로 있었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그 직을 사임하고 민중의 반일의식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으며, 또 1907년 고종의 헤이그특사파견을 계기로 일제가 고종을 위협하여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무력으로 체결하자 구국 항일운동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 해 7월에 각처의 의사(義士)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항일투쟁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강년(李康秊)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휘하에 들어가 풍기·봉화·예천·용궁·문경 등지를 중심으로 일본헌병분파소·일본군사기지·일본경찰분서 등을 습격하여 건물을 소각하거나 순검·경찰보조원 또는 친일반역분자 등을 사살하였다.

특히, 1907년 9월중에는 이강년· 민긍호 ( 閔肯鎬 )의 의병진과 연합하여 의병 1,000여명을 이끌고 문경읍 갈평리에서 일본경찰과 군인이 인솔하는 일본경찰대 및 수비대와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일본경찰 3명과 한인 순검 2명을 사살하였다.

또, 같은달 16일에도 의병 300여명을 이끌고 상주읍을 습격하여 대구수비대 소속 다나카(田中)대위가 거느린 1개중대의 일본군과 격전을 전개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의병진이 크게 패하고 그도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일본수비대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의병에 관한 정보를 밝히지 않았으며, 총살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장덕랑(張德郞)

후단양(後丹陽) 계통에서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조선(朝鮮) 초기에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한 덕랑(德郞)이 있다.

 

장계증(張繼曾)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올랐던 계증(繼曾)이 유명했다.

 

장온(張溫)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웠던 온(溫)은 정국3등공신(靖國三等功臣)으로 단양군 (丹陽君)에 봉해졌다.

 

장강(張綱)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장석규(張錫奎)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석규(錫奎),

 

장준(張準)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출전 <하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37

用(용),甫(보)

43

庠(상),慶(경)

49

寅(인)

38

鳳(봉),九(구)

44

宰(재),華(화)

50

卿(경)

39

南(남),柄(병)

45

重(중),廷(정)

51

振(진)

40

寧(녕),行(행)

46

揆(규),昊(호)

52

範(범)

41

成(성),盛(성)

47

學(학)

53

 

42

起(기),熙(희)

48

東(동)

54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단양 장씨(丹陽張氏)는 남한(南韓)에 총 7,365, 30,51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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