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李(광평:성산이씨)
본관(本貫): 광평(廣平) 성산(星山)
시조(始祖): 이무재(李茂材)
유래(由來):
광평 이씨(廣平李氏)의 시조(始祖)는 성산(星山: 성주의 고호)에 토착 세거(土著世居)한 사족(士族)으로 고려 말에 사재 동정(司宰同正)을 지낸 이무재(李茂材)이며, 그의 증손(曾孫) 능(能)이 나라에 공을 세워 광평(廣平: 성주의 고호)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광평(廣平)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지금은 성산(星山)으로 쓰고 있다.
본래 성주(星州)에는 여섯 가문의 이씨(李氏)가 세거(世居)하면서 조선(朝鮮) 정조(正祖) 이전까지는 다같이 본관을 성주(星州)로 사용했으나, 그 후 각각 성주(星州)·광평(廣平)·성산(星山)·경산(京山)·벽진(碧珍)·가리(加利)로 본관(本貫)을 달리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이호성(李好誠)
호성(好誠)이 조선 세종(世宗)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벼슬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이르렀다.
이희조(李希祖)
옥포 만호(玉浦萬戶)를 지낸 희조(希祖)는 호성의 손자로 부모 봉양을 위해 벼슬을 사양했으며 조부(祖父 : 호성)를 위해 동산정(東山亭)을 세웠다.
이순조(李順祖)
순조(順祖)는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성종조(成宗祖)에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으나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을 개탄, 벼슬을 버리고 은거(隱居)했다.
이령(李伶)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전장에서 순절한 령(伶)은 통정대부(通政大夫)·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이명신
명신은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지냈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와 이 괄(李 适)의 난 때 공훈이 있어 훈권(勳券)을 두 차례나 받았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광평·성산 이씨(廣平·星山 李氏)는 남한에 총 16,812가구, 67,5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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