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李(동성:사천이씨)
본관(本貫): 동성(東城) 사천(泗川)
시조(始祖): 이식(李軾)
유래(由來):
동성 이씨(東城李氏)의 선대(先代)는 중국 농서의 분파로 사천(泗川)에서 세거(世居)하였다. 시조(始祖) 이식(李軾)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국자진사(國子進士)로 송악 군수(松岳郡守)를 역임했으며, 그의 6세손 자가 담양교도(潭陽敎導)를 지낼 때까지 모두 6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지냈고, 후손들이 사천(泗川)에서 누대에 걸쳐 사족(士族)으로 토착 세거(土著世居)하며 동성(東城)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이정(李楨)
후손 정(楨)이 일찍이 당대에 이름난 성리학의 대가 송인수(宋麟壽)의 문하에서 글을 읽고, 중종(中宗)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하여 삼사(三司)의 벼슬을 거쳐 경주 부윤(慶州府尹)이 되었다. 그 후 선조대(宣祖代)에 이르기까지 4조(朝)에 걸쳐 나라에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리학(性理學)에도 밝아 퇴계(退溪) 이 황(李 滉)과 친교가 있었으며 <성리유편(性理遺篇)>을 저술하였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동성·사천 이씨(東城·泗川李氏)는 남한에 총 1,701가구, 7,0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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