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林(경주임씨)
본관(本貫): 경주(慶州)
시조(始祖): 임계정(林繼貞)
유래(由來):
경주 임씨(慶州林氏)는 고려(高麗) 때 평찰품사(評察品事)로 지낸 임몽주(林夢周 : 시호는 충선공)의 17세손 임계정(林繼貞)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있다.
「경주임씨세보(慶州林氏世譜)」에 의하면 관조(貫祖)인 계정(繼貞)은 1505년(연산군 11)에 생원(生員) 곤(棍)의 셋째 아들로 출생하여 인종조(仁宗朝)에 성균관(成均館)의 진사(進士)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가 경주 판관(慶州判官)을 지냈으므로 후손 들이 경주(慶州)를 본관(本官)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임희지(林熙之)
1765(영조 41) ∼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경주 ( 慶州 ). 자는 경부(敬夫), 호는 수월당(水月堂) · 수월헌(水月軒) 또는 수월도인(水月道人). 한역관(漢譯官)출신으로 벼슬은 봉사를 지냈으며, 중인출신 문인의 모임인 송석원시사 ( 松石園詩社 )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조희룡 ( 趙熙龍 )의 ≪ 호산외사 壺山外史 ≫ 에 의하면, 키가 8척이나 되고 깨끗한 풍모를 지녔던 일세의 기인으로, 생황을 잘 불었고, 대나무와 난초를 특히 잘 그려 묵죽은 강세황 ( 姜世晃 )과 병칭될 만큼 명성이 높았으며, 묵란은 오히려 강세황보다 나았다고 한다.
유작으로 패기와 문기(文氣)가 넘치는 〈 묵죽도 〉 · 〈 묵란도 〉 등이 여러 점 전하는데, 특히 묵란은 김정희 ( 金正喜 ) 이전 작품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대표작으로 〈 난죽도 〉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와 〈 묵란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 삼청도 三淸圖 〉 등이 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경주 임씨(慶州林氏)는 남한(南韓)에 총 613가구, 2,77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하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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