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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장수이씨(李)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장수이씨)

 

본관(本貫): 장수(長水)

시조(始祖): 이임간(李林幹)

유래(由來):

 

장수 이씨(長水李氏)는 알평(謁平 : 경주 이씨의 시조)52세손이며,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 정승(政丞)으로 장천부원군(長川府院君)에 봉해진 이임간(李林幹)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손자 을진(乙珍)이 공민왕 때 정승(政丞)을 지냈고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助功臣)에 책록되어 장천 부원군(長川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장수(長水 : 장천의 현지명)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이종무(李從茂)

1360(공민왕 9)1425(세종 7).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1381(우왕 7)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었다.

1397(태조 6) 옹진만호로 재직중 왜구가 침입해 성을 포위하자 끝까지 싸워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첨절제사에 올랐다. 1400(정종 2) 상장군으로 제2차 왕자의 난 때 방간(芳幹)의 군사를 무찔러 좌명공신 ( 佐命功臣 ) 4등에 녹훈되고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다. 의주의 병마절제사를 거쳐, 1406(태종 6) 좌군총제(左軍摠制)가 되고 이어 우군총제를 겸했으며, 이 해 장천군(長川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1408년 남양·수원 등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하고, 이듬 해 안주도병마사, 1411년 안주절제사를 거쳐, 이듬 해 별시위좌이번절제사(別侍衛左二番節制使)로 정조사 ( 正朝使 )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3년 동북면도안무사 겸 병마절도사를 거쳐, 영길도도안무사(永吉道都安撫使)가 되었다. 1417년 좌참찬·판우군도총제(判右軍都摠制의용위절제사(義勇衛節制使)를 지내고, 1419(세종 1) 삼군도체찰사에 올랐다.

이 해 왜선 50여 척이 비인현의 도두음곶(都豆音串)에 침입해 병선을 불태우고 약탈하며, 절제사 이사검 ( 李思儉 )을 해주·연평곶(延平串)에서 포위하는 등 침입이 잦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적의 허점을 틈타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對馬島)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전함 227, 군량 65일분, 군졸 17285명을 거느리고 대마도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이에 정벌군을 지휘해 대마도를 공략, 대소 선박 129척과 가호(家戶) 1,940여 호를 소각했으며, 114()을 참수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귀국한 뒤 찬성사에 승진했으나, 불충한 김훈 ( 金訓 노이(盧異) 등을 정벌군에 편입시켰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삭직되어 상원 ( 祥原 )에 유배되었다.

이듬 해 복관되고, 1421년 부원군 ( 府院君 )에 봉해졌으며, 다음 해 사은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동행한 정희원(鄭希遠)의 불경한 행동을 직계하지 않아 1423년 과천에 부처(付處)되었다가 이듬 해 풀려나와 복관되었다. 시호는 양후(襄厚)이다.

 

이희급(李希伋)

또한 선조(宣祖)때의 명현(名賢) 희급(希伋)은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 현감(咸陽縣監)을 지내던 중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최후까지 싸워 적을 격퇴한 공으로 선무이등공신(宣武二等功臣)이 되었다.

 

이중섭(李仲燮)

한국의 천재 화가 중섭(仲燮)도 장수 이씨(長水李氏)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李從茂(이종무) 장군의 일화. 장수.

 

어려서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1381(우왕 7)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었다.

1397(태조 6) 옹진만호로 재직 중 왜구가 침입해 성을 포위하자 끝까지 싸워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첨절제사에 올랐다. 1400(정종 2) 상장군으로 제2차 왕자의 난 때 방간(芳幹)의 군사를 무찔러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녹훈되고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다.

 

 

李從茂(이종무) 장군의 일화.

 

오랫동안 지리·정서적으로 일본보다 한국에 가까웠던 대마도가 왜구의 소굴이 돼 우리 연안을 본격적으로 유린한 것은 고려 말, 조선 초 때의 격변기였다. 두 번이나 대마도를 정벌하고 유화책을 써 봤지만 약탈행위가 근절되지 않자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앉은 태종은 1419(세종1)에 이종무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한 대마도 정벌군을 편성한다.

14196, 충청·전라·경상 3도 수군이 거제도 견내량에 집결했다.

병선 227척에 병력이 17300명이나 된 대규모 해외원정군이었다. 620일 대마도 아소만에 상륙한 정벌군이 대마도주의 항복을 권했으나 반응이 없자 본격적인 토벌에 나섰다.

129척의 선박을 소각· 포획하고 가옥도 1940여채나 불태웠다.

왜구도 104명이나 죽이고 21명을 포로로 삼았다. 이 정벌로 왜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수십 년간 지속돼온 국가의 근심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출전 <한미녹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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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장수이씨(長水李氏)는 남한에 총 3,021가구, 12,62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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