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李(수원이씨)
본관(本貫): 수원(水原)
시조(始祖): 이자송(李子松)
유래(由來):
수원 이씨(水原李氏)의 시조(始祖) 이자송(李子松)은 문무공(文武公) 천일(天一: 공주 이씨의 시조)의 34세손으로 전한다. 그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도찰리사(道察理使)를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로 원(元)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와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단성보조공신(端誠輔祚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그 후 우왕(禑王) 때 개경 유수(開京留守)로 왕의 방탕함을 간(諫)하다가 한때 파직되기도 했으나 다시 등용되어 공산부원군(公山府院君)에 봉해졌다가 사망 후 수성(隨城: 수원의 별호) 부원군(府院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자송(子松)을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을 수원(水原)으로 삼아 수원에서 정착 세거(定著世居)하며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이장길(李長吉)
자송(子松)의 아들 장길(長吉)이 조선에서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이인기(李仁奇)
자송 손자 인기(仁奇)가 판밀직사(判密直事)를 역임했다.
이인수(李仁壽)
자송의 증손 인수(仁壽)는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역임했다.
이효신(李孝信)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이령(李嶺)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했다.
이원휘(李元輝)
원휘(元輝)는 벼슬이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이영석(李永碩), 이징명(李徵明)
영석(永碩)과 징명(徵明)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이휘백(李輝白)
휘백(輝白)은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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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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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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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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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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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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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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錫(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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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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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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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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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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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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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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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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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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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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榮(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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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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秉(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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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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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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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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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수원 이씨(水原李氏)는 남한에 총 1,434가구, 6,37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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