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李(순천이씨)
본관(本貫): 순천(順天)
시조(始祖): 이사고(李師古)
유래(由來):
순천 이씨(順天李氏)의 시조(始祖) 이사고(李師古)는 고려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승평백(昇平伯)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들이 순천(順天)에 정착 세거(定著世居)하게 되면서 본관을 순천(順天)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이양소(李陽昭)
사고(師古)의 아들 양소(陽昭)가 일찍이 정몽주(鄭夢周) 문하에서 글을 배워 문과에 급제, 사예(司藝)를 거쳐 군수(軍守)를 역임했다. 특히 그는 이방원(李芳遠)과 곡산(谷山) 청룡사(靑龍寺)에서 함께 학문을 닦아 교분이 두터웠으며 조선이 개국하자 태조(太祖)가 여러번 불렀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거절했다. 태종(太宗)은 옛 벗인 그의 의절(義節)을 가상히 여겨 그가 은거(隱居)해 있는 산을 청화산(淸華山)이라 부르고 저택을 하사했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장지(葬地)까지 지정해 주었다고 한다.
이극문(李克文)
양소(陽昭)의 아들 두 형제도 모두 벼슬에 나갔는데, 맏아들 극문(克文)은 부사(府使)를 역임했다.
이극충(李克忠)
양소의 차남 극충(克忠)은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영기(李永祺), 이영복(李永福), 이정조(李鼎祚)
정조(鼎祚)·영복(永福)·영기(永祺)가 현감(縣監)을 역임.
이덕구(李德耉)
덕구(德耉)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이태진(李泰鎭)
태진(泰鎭)은 참판(參判)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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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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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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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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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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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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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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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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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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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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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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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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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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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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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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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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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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載(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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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순천 이씨(順天李氏)는 남한에 총 1,064가구, 4,64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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