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李(덕산이씨)
본관(本貫): 덕산(德山)
시조(始祖): 이존술(李存述)
유래(由來):
덕산 이씨(德山李氏)의 시조 이존술(李存述)은 고려 명종 때 덕풍(德豊: 충남 예산군 덕산) 호장(戶長)을 지내고, 그의 아들 언후(彦厚)와 손자 극보(克甫), 그리고 증손 핵이 검교 대장군(檢校大將軍)을 지내며 명문의 기틀을 다졌으므로 후손들이 덕산(德山)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이유실(李瑜實)
5세손 유실(瑜實)이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역임했다.
이겸(李謙)
유실의 아들 겸(謙)이 비서교서랑(秘書校書郞)을 역임.
이사목(李思牧)
겸의 아들 사목(思牧)은 집현전의 대제학(大提學)에 올랐다.
이영(李英)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했다.
이유(李愉)
유(愉)가 조선 때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였다.
이조
조는 관직에 재직중 대간의 모함을 받아 두 차례나 유배를 당한 후 풀려나와 이조 의랑(吏曹議郞)을 거쳐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올랐다.
이사맹(李師孟)
사맹(師孟)은 유(愉)의 아들로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 참판(兵曹參判) 등을 거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이순(李純)
순(純)은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봉상시정(奉常寺正)을 거쳐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
이규문(李奎文)
규문(奎文)은 참판(參判)을 지냈다.
이종원(李宗源)
상만(尙萬)의 아들 종원(宗源)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안창호(安昌浩)·이승만(李承晩)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망한의 한을 안고 자결했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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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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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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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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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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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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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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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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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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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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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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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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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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錫(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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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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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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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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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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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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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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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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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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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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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덕산 이씨(德山李氏)는 남한에 총 1,732가구, 7,35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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