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殷(행주은씨)
본관(本貫): 행주(幸州)
시조(始祖): 은홍열(殷洪悅)
유래(由來):
은씨(殷氏)는 중국 당(唐)나라 출신으로 신라(新羅)의 주청(奏請)에 의해 850년(신라 문성왕 12) 8학사 중 한 사람인 은홍열(殷洪悅)이 동래(東來)하여 뿌리를 내린 것이 시초이다.
행주 은씨(幸州殷氏)의 시조(始祖) 은홍열(殷洪悅)은 신라왕조에서 벼슬이 태자태사(太子太師)·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에 이르렀고 덕양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였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행주(幸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은씨의 본관(本貫)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通寶)」에 태인(泰仁)·명곡(椧谷)·행주(幸州) 등 9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現存)하는 본관(本貫)은 행주 은씨(幸州殷氏) 단본(單本)으로 알려진다.
가문의 중요 인물
은정(殷鼎)
생몰년 미상. 고려 중기의 문신. 1071년(문종 25) 비서소감 우부승선(秘書少監右副承宣)이 되었고, 뒤이어 시랑 ( 侍郎 )이 되었다. 사학12도(私學十二徒) 중의 하나인 문충공도 ( 文忠公徒 )를 세워 후진을 가르쳤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은여림(殷汝霖)
조선조에서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한 장손(長孫)의 아들인 여림(汝霖)은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우헌납(右獻納)·경력(經歷) 등을 거쳐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올라 가문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은현(殷顯)
통헌대부(通憲大夫)를 역임했다.
은보(殷輔)
해주(海州)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은정화(殷鼎和)
현종(顯宗)과 숙종대(肅宗代)의 학자(學者)로 이름난 정화(鼎和)는 최서림(崔瑞琳)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닦아 일면 「상계선생(相溪先生)으로 불리워졌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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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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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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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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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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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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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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燮(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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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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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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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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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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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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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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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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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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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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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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杓(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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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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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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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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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행주 은씨(幸州殷氏)는 남한에 총 2,975 가구, 12,130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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