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兪(고령유씨)
본관(本貫): 고령(高靈)
시조(始祖): 유진(兪軫)
유래(由來):
고령 유씨(高靈兪氏)의 시조(始祖)는 고려(高麗) 현감(縣監)을 역임한 유진(兪 軫)이라 전하는데, 그리하여 그 후 후손들이 고령(高靈)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유호인(兪好仁)
1445(세종 27) ∼ 1494(성종 25). 조선 전기의 문신 · 문장가.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 · 뇌계( 浙 溪). 음(蔭)의 아들이며, 김종직 ( 金宗直 )의 문인이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1462년(세조 8)에 생원이 되고, 1474년(성종 5)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봉상시부봉사(奉常寺副奉事)를 거쳐, 1478년 사가독서 ( 賜暇讀書 )한 뒤 1480년에 거창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 뒤 공조좌랑을 지내고, 1486년에 검토관 ( 檢討官 )을 거쳐 이듬해 ≪ 동국여지승람 ≫ 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홍문관교리로 있다가 1488년 의성현령으로 나갔다. 1490년 ≪ 유호인시고 兪好仁詩藁 ≫ 를 편찬하여 왕으로부터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본래 글을 좋아하는 성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94년 장령을 거쳐 합천군수로 재직 중 병사하였다. 장수의 창계서원(蒼溪書院), 함양의 남계서원(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고령 유씨(高靈兪氏)는 남한에 총 1,957 가구, 8,743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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