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溫(봉성온씨)
본관(本貫): 봉성(鳳城)
시조(始祖): 온달(溫達)
유래(由來):
봉성 온씨(鳳城溫氏)는 중국(中國)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아우로 당(唐)에 봉해진 숙우(叔虞)의 12세손 소후(昭候)가 그의 아우 사(師)를 온(溫)에 봉하고 평원(平原)에 도읍을 정하게 하니 온씨의 성(姓)이 여기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온씨(溫氏)의 본관(本貫)은 서원(西原)·온양(溫陽)·전주(全州)·이성(伊城)·나주(羅州)·평호(平皐)·금구(金溝)·거야(巨野)·경주(慶州)·진주(晋州) 등 11본(本)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동일혈족(同一血族)이므로 봉성(鳳城)으로 단일화(單一化)하고 있다.
봉성 온씨(鳳城溫氏)는 멀리 삼국시대(三國時代)에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구려(高句麗) 때 평강공주(平岡公主)와 혼인하여 평원왕(平原王)의 부마(駙馬)가 된 온달(溫達)로부터 온씨의 혈통(血統)이 시작되어, 신라 진덕왕(眞德王) 때 온군해(溫君解), 고려충목왕(忠穆王) 때 회양 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온 수(溫 粹)로 이어져 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온선(溫善)
수(粹)의 아들 형제 중 맏아들 선(善)은 에의 판사(禮儀判事)를 역임했다.
온신(溫信)
수의 둘째아들 둘째 신(信)은 우부시랑(右部侍廊)으로서 공민왕(恭愍王) 때 이존오(李存吾)·정 추(鄭 樞)와 함께 신 돈(辛 旽)의 전횡(專橫)을 탁핵하다가 왕(王)의 노여움을 사서 거야(巨野 : 금구의 옛 지명)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세거(世居)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신(信)을 일세조(一世祖)로 삼고, 관향(貫鄕)을 봉성(鳳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온임(溫琳)
시조 신(信)의 아들 임(琳)이 좌랑(佐郞)을 지냈다.
온후(溫厚)
윤의 아들 후(厚)는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여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졌다.
온훤(溫喧), 온순흥(溫舜興)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온정화(溫鼎和)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온주택(溫鑄澤)
한말(韓末)에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표 출전<하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처사공파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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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
세
|
항렬자
|
세
|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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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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鉉(현),樂(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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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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鎬(호),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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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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柱(주),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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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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堯(요),燮(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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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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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한),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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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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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희),柾(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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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공파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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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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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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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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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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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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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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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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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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泳(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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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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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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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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鏞(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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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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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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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공파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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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
세
|
항렬자
|
세
|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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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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載(재),圭(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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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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泳(영),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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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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炳(병),炯(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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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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鐘(종),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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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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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권),杞(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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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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培(배),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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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봉성 온씨(鳳城溫氏)는 남한(南韓)에 총 1,045가구, 4,39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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