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邕(옥천:순창옹씨)
본관(本貫): 옥천(玉川): 순창(淳昌)
시조(始祖): 옹몽진(邕夢辰)
유래(由來):
옥천,순창 옹씨(玉川,淳昌 邕氏)의 시조(始祖)는 고려조(高麗朝)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낸 옹희태(邕羲泰)로 전(傳)하며, 판관(判官)을 지낸 몽진(夢辰)을 중조(中祖)로 하고 있다.
그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후손들은 명정(命廷)의 아들 은(誾)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선조(先祖)의 세거지(世居地)인 순창(淳昌 : 옥천의 옛 지명)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옹몽진(邕夢辰)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순창옹씨(淳昌邕氏)의 시조. 자는 응룡(應龍)·응기(應祈). 아버지는 태운(太雲)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판관에 이르렀다.
1567년 음성현감으로서 정치를 잘하여 백성의 오랜 폐단을 제거하여 칭송을 받았다. 일찍이 문장가로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옹경신(邕景信)
달행(達行)의 아들인 경신(景信)이 조선(朝鮮) 인조(仁祖) 때 이 괄(李 适)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데 공(功)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자호란(丙子胡亂) 때 세운 공(功)으로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에 제수되었으며 효행(孝行)이 뛰어나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옹기풍(邕基豊)
학문(學問)이 뛰어나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됨.
옹택규(邕宅奎)
한말(韓末)에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했다.
옹봉규(邕奉奎)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옹승규(邕勝奎)
관찰부주사(觀察府主事)를 역임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옥천,순창 옹씨(玉川,淳昌邕氏)는 남한(南韓)에 총 141가구, 57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출전<하민족대성보>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