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王(제남왕씨)
본관(本貫): 제남(濟南)
시조(始祖): 왕유(王儒)
유래(由來):
제남왕씨(濟南王氏)의 시조(始祖) 왕유(王儒)는 처음에 성(姓)이 박씨(朴氏)였는데, 태봉국(泰封國) 궁예(弓裔)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궁예의 횡포가 차츰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산 속에서 은거(隱居) 하였다가, 왕 건(王 建)이 고려(高麗)를 건국하자 등용되어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태조(太祖) 왕 건(王 建)이 왕씨(王氏)로 사성(賜姓)한 것으로 전한다.
한편 또 다른 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청(淸)나라 세조(世祖)가 주문왕(周文王)의 후예인 왕씨(王氏)를 멸족(滅族)하고자 1945년(인조 23) 왕봉강(王鳳崗)이란 사람을 심양 포로소(瀋陽捕虜所)로 압송(押送)하였다. 그때 마침 심양(瀋陽)에 볼모로 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이 그를 보고는 서로 뜻이 맞아 결의(結義)하고 함께 동래(東來)하여 이문(以文)이라는 이름을 하사(下賜)하였고, 궁중(宮中)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북벌대계(北伐大計)를 논의(論議)했다.
그 후 자손(子孫)에게 세록(世祿)을 하사(下賜)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로 추증하였으므로,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제남(濟南)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왕한익(王韓翊)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왕한정(王漢禎)
군수(郡守)를 역임했다.
왕도욱(王道郁)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왕도원(王道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왕경진(王景進)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왕덕구(王德九)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왕제만(王濟萬)
중추원(中樞院)의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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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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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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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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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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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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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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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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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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錫(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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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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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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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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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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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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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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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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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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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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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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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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秉(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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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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炫(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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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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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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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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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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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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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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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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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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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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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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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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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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均(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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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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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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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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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제남 왕씨(濟南王氏)는 남한(南韓)에 총 196가구, 8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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